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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녀 (이효석) - 1-2. 속내를 들리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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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녀 (이효석)
1-1. 집채 같은 돼지
1-2. 속내를 들리운 것 같아
2-1. 비밀의 자취도 어스레
2-2. 불의의 수입
3-1. 뾰족한 구두
3-2. 어느 놈팽이를
3-3. 있었다면 탈이다
4-1. 못된 것 각다귀
4-2. 다만 부끄러울 뿐
5-1. 중국인 왕가
5-2. 완전히 눈을 뜨다
6. 커다란 꾀임
7. 수틀리면 또 내빼구
<한꺼번에 보기>

 


잠을 설굳혀버린 분녀는 고시랑고시랑 생각에 밤을 샜다. 이튿날은 공교로히 궂은 까닭에 비를 칭탈하고 일을 쉬고 다음날 비로소 묘포로 나갔다.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뱅돌아 사람을 만나기가 여간 겸연쩍지 않다. 사람마다 기연미연 혐의를 걸어보기란 면란스런 일이었다.

하늘이 제대로 개이고 땅이 이지러지지 않은 것이 차라리 시뻐스럽다. 천지는 사람의 일신의 괴변쯤은 익지 않은 과실이 벌레에게 긁히운 것만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다행이지 몸의 변고가 일일이 하늘에 비치어진다면 기분이 순야 옥녀 모든 동무들에게 그것이 알려질 것이요 그들의 내정도 역시 속뽑히울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별안간 그들은 대체 성할까 하는 의심이 불현듯이 솟아오르며 천연스러운 얼굴들이 능청스럽게 엿보였다.

박추와 명준에게만은 속내를 들리운 것 같아서 고개가 바로 쳐들리지 않았다. 다시 살펴도 가잠나룻이 듬성한 검센 박추. 거드럼부리는 들대밑. 이 녀석한테 당하였다면 이 몸을 어쩌노. 잠자코 풀 뽑는 무죽한 명준이, 새침한 몸집 어느 구석에 그런 부락부락한 힘이 들어 있을고.

사람은 외양으론 알 수 없다. 마치 그것이 명준이요 적어도 명준이었으면 하는 듯이 이렇게 생각은 하나 면상과 눈치로는 그가 근지 누가 근지 도무지 거니챌 수 없다. 이러다가 평생 그 사람을 모르고 지나지나 않을까.

맡은 땅의 풀을 뽑고 난 명준은 감독의 분부로 이깔 포기에 뿌릴 약제를 풀어 무자위로 치기 시작하였다. 한 손으로 물을 뿜으며 다른 손으로 물줄기를 흔들다가 고무줄이 빗나가는 서슬에 푸른 약물이 옥녀의 낯짝을 쏘았다.

옥녀는 기급을 하여 농인 줄만 알고 “저 녀석 얼뜨개같이 해가지고 요새 무슨 곡절이 있어." 하고 쏘아붙인다. 명준은 픽 웃으며 마침 손이 비인 분녀에게 고무줄을 쥐어주고 뿌려주기를 청하였다. 두 사람이 한 무자위로 협력하게 되자 옥녀는 더 말이 없었다.

통의 것을 다 쳤을 때 다시 물을 길을 양으로 분녀는 명준의 뒤를 따라 도랑으로 내려갔다. 도랑은 풀이 가리워 밭에서 보이지 않는다. 명준은 손가락으로 몰탕을 치며 낯이 부드럽다.

“일하기 되지 않니?"

대번에 농조로,

“너 어떤 놈에게로 시집가련. 박추한테라도."

“미친것 닫다가."

“시집 갔니? 안 갔니?"

관자놀이가 금시에 빨개진 것을 민망히 여겨 곧 뒤를 이었다.

“평생 시집 안 갈 테냐?"

“망할 녀석."

“난 이 고장에서 없어지겠다. 살 재미 없어. 계집애들 틈에 끼어 일하기도 낯없다. 일한대야 부모를 살릴 수 없고 잠단 세금도 못 물어 드잡이를 당하는 판이 아니냐. 이까짓 고향 고맙잖어. 만주로 가겠다. 돌아다니며 금광이나 얻어보련다. 엄청난 소리지. 그러나 사람의 운수를 알 수 있니?"

“정말 가겠니?"

“안 가고 무슨 수 있니? 이까짓 쭉쟁이 땅 파야 소용 있나. 거기도 하늘 밑이니 사람이 살지 설마 짐승만 살겠니?"

물을 나르고 다시 도랑으로 내려왔을 때 명준은 닫다가 분녀의 팔을 잡았다.

“금덩이를 지고 올 때까지 나를 기다려주련?"

눈앞에 찰락거리는 명준의 옷고름이 새삼스럽게 눈에 뜨이자 분녀는 번개같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끝을 홀켜맨 고름이 같은 꼴의 제 고름과 함께 나란히 드리운 것이다.

“네 짓이었구나."

분녀는 짧게 외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언제까지든지 나를 기다리고 있으련?"

박추의 소리가 나자 두 사람은 날쌔게 떨어져 밭으로 갔다. 분녀는 눈앞이 아찔하며 별안간 현기증이 났다.

그뿐 명준은 다시 묘포밭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도 다음 다음날도. 며칠 후에 짜장 만주로 내뺐다는 소문이 들렸다. 분녀는 마음이 아득하고 산란하여 일을 쉬는 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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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 2008년 5월 16 금요일, 0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