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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녀 (이효석) - 6. 커다란 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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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녀 (이효석)
1-1. 집채 같은 돼지
1-2. 속내를 들리운 것 같아
2-1. 비밀의 자취도 어스레
2-2. 불의의 수입
3-1. 뾰족한 구두
3-2. 어느 놈팽이를
3-3. 있었다면 탈이다
4-1. 못된 것 각다귀
4-2. 다만 부끄러울 뿐
5-1. 중국인 왕가
5-2. 완전히 눈을 뜨다
6. 커다란 꾀임
7. 수틀리면 또 내빼구
<한꺼번에 보기>




그 후로 천수와의 사이가 뜬 것은 물론이어니와 분녀에게는 여러가지 궁리가 많아서 얼마간 거리와 일체 발을 끊었다. 아침 저녁으로 관사에 다니는 것도 일부러 궁벽한 딴길을 골랐다. 관사에서 일하는 이외의 여가는 전부 집에서 보냈다.

빈집을 지키며 울밑 콩포기도 가꾸고 우물물을 길어 몸도 퍼찔 씻고 하는 동안에 열이 식어지고 마음도 차차 잡혔다. 몸이 깨끗하고 정신이 맑은 데다 뜰 앞의 조촐한 화초포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지난일이 꿈결같이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 무슨 무더운 대병이나 치르고 난 것같이 몸이 거뿐하다.

모든 것이 지나간 꿈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이겠다고 생각해보면 머리채를 땋아내린 몸으로 엄청난 짓을 한 것이 새삼스럽게 뉘우쳐진다. 명준 만갑 천수 왕가 머릿속에 차례차례로 떠오르는 환영을 힘써 지워버리려고 애쓰면서 날을 보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처럼 조화 많은 것은 없는 듯하다. 언제까지든지 찬 우물물을 끼얹어 식히고 얼리울 수는 없었다. 견물생심으로 다시 분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변괴가 생겼다. 망칙스런 꼴이 눈에 불을 붙여놓았다.

여름의 관사는 까딱하면 개망신처가 되기 쉽다. 문이란 문, 창이란 창은 죄다 열어젖히우고 대신에 얇은 발이 치우면 방안의 변이 새이기 맞춤이다. 문이란 벽속의 비밀을 귀뜸하는 입이다. 그 안에 사는 임자가 밤과 낮조차 구별할 주책이 없을 때에 즐겨 망신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날 저녁 무렵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더우면 사람들은 해변에서나 집안에서나 옷벗기를 즐겨한다. 분녀는 이역 유난스럽게도 일찌기 부엌일을 마치고는 목욕물을 가늠보러 목욕간으로 들어갔다. 물줄기를 틀어 더운 물을 맞추면서 한결같이 누구보다도 먼저 시원한 물속에 잠겼으면 하는 불측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대체 주인 양주는 이때껏 무엇을 하고 있나 하고 빈지 틈에 눈을 대었다. 이 괴망스러운 짓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빈지 틈으로는 맞은편 건넌방이 또렷이 보인다. 분녀는 하는 수 없이 방안의 행사를 일일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숨을 죽였다. 피가 솟아 얼굴이 확 단다. 목구멍이 이따금 울린다. 전신의 신경을 살려 두손을 펴고 도마뱀같이 빈지 위에 납짝 붙었다.

수도물이 쏟아질 대로 쏟아져 목욕통이 넘쳐나는 것도 잊어버리고 분녀는 어느 때까지나 정신없이 빈지에 붙어앉았다. 더운 김에 서리워서인지 눈에 불이 붙어서인지 몸이 불덩이같이 덥다.

날을 지나도 흥분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세상도 있구나.

거기에 비하면 지금까지 겪은 세상은 너무도 단순하고 아무것도 아닌 - 방안의 세상이 아니요 문 밖 세상 같은 생각이 든다. 가지가지의 경험을 죄진 것같이 여기던 무거운 생각도 어느결엔지 개어지고 도리어 자연스럽고 그 위에 그 무엇이 부족하였다는 느낌조차 들었다.

관사의 광경은 확실히 커다란 꾀임이었다. 일시 잠자던 것이 다시 깨어나 이번에는 더 큰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우물물을 퍼서 몸에 퍼부어도 쓸데없다. 한시도 침착하게 앉아 있을 수 없이 육신이 마치 신장대 모양으로 설레는 것이다.

만약 그날로 돌연히 상구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더면 분녀는 어떻게 일신을 정리하였을까.

요술과도 같이 뜻밖에 상구가 찾아왔다. 들어간 지 거의 달포 만이다. 얼굴은 부숭부숭 부었으나 어느틈엔지 머리까지 깎은 후라 일신은 단정하다. 짜장 반가운 판에 분녀는 조금 수다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고생했구나."

“맞았다! 동무들이 가엾다."

상구는 전과는 사람이 변한 것같이 속도 열리고 말도 걱실걱실 잘 받는 것이 분녀에게는 알 수 없이 반갑다.

“몸이 부은 것 같구나. 거북하지 않으냐."

“넌 내 생각 안했니."

다짜고짜로 몸을 끌어당긴다. 분녀는 굳이 몸을 빼지 않았다.

“이번같이 그리운 때 없다."

“별안간 싼들한 것 같구나."

핑계 겸 일어서서 분녀는 방문을 닫았다.

상구에게 대한 지금까지의 불만도 뉘우침도 다 잊어버리고 상구의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누구보다도 지금에는 상구가 가장 그리운 것이다. 지난날도 앞날도 없고 불붙는 몸에는 지금이 있을 뿐이다. 상구의 입술이 꽃같이 곱다.

다음날 관사에 나갔을 때에 분녀는 천연스런 양주의 얼굴을 속으로 우습게 여기는 한편 천연스런 자신의 꼴을 한층 더 사특하게 여겼다.

그날 밤도 상구가 오기는 왔으나 기쁜 낯으로가 아니었다. 밤늦게 오면서도 그는 전과 같이 노여운 태도였다. 퉁명스런 목소리였다.

“너를 잘못 알았다."

발을 굴으며,

“네까진 것한테 첫 몸을 준 것이 아까와."

이어,

“짐승 같은 것. 너를 또 찾은 내가 잘못이었지. 그렇게까지 된 줄이야 알았니?"

기어이 볼을 갈겼다.

“소문 다 들었다."

“……"

“굳이 일일이 이름 들 것도 없겠지. 어떻든 난 쉬 떠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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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 2008년 5월 16 금요일, 0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