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브러리!

 
Home 단편소설 한국 단편 분녀 (이효석) - 1-1. 집채 같은 돼지

분녀 (이효석) - 1-1. 집채 같은 돼지

E-mail 인쇄
User Rating: / 6
PoorBest 
Article Index
분녀 (이효석)
1-1. 집채 같은 돼지
1-2. 속내를 들리운 것 같아
2-1. 비밀의 자취도 어스레
2-2. 불의의 수입
3-1. 뾰족한 구두
3-2. 어느 놈팽이를
3-3. 있었다면 탈이다
4-1. 못된 것 각다귀
4-2. 다만 부끄러울 뿐
5-1. 중국인 왕가
5-2. 완전히 눈을 뜨다
6. 커다란 꾀임
7. 수틀리면 또 내빼구
<한꺼번에 보기>

 


우리도 없는 농장에 아닌 때 웬일인가들 의아하게 여기고 있는 동안에 집채 같은 돼지는 헛간 앞을 지나 묘포밭으로 달아온다. 산돼지 같기도 하고 마바리 같기도 하여 보통 돼지는 아닌 데다가 뒤미처 난데없는 호개 한 마리가 거위영장같이 껑충대고 쫓아오니 돼지는 불심지가 올라 갈팡질팡 밭위로 우겨든다. 풀 뽑던 동무들은 간담이 써늘하여 꽁무니가 빠져라 산지사방으로 달아난다. 허구많은 지향 다 두고 돼지는 굳이 이쪽을 겨누고 욱박아오는 것이다.

분녀는 기급을 하고 도망을 하나 아무리 애써도 발이 재게 떨어지지 않는다. 신이 빠지고 허리가 휘는데 엎친 데 덮치기로 공칙히 앞에는 넓은 토벽이 막혀 꼼짝 부득이다.

옆으로 빗빼려고 하는 서슬에 돼지는 앞으로 왈칵 덮친다. 손가락 하나 놀릴 여유도 없다.

육중한 바위 밑에서 금시에 육신이 터지고 사지가 떨어지는 것 같다. 팔을 옴짝달싹할 수 없고 고함을 치려야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분녀는 질색하여 눈을 떴다.

허리가 뻐근하여 몸이 통세난다.

문득 짜장 놀라서 엉겁결에 소리를 치나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입안에는 무엇인지 틀어막히우고 수건으로 자갈을 물리워 있지 않은가. 손을 쓰려 하나 눌리웠고 다리도 허리도 머리도 전신이 무거운 돼지 밑에 있는 것이다. 몸에 칼이 돋히기 전에는 이 몸 도둑을 물리칠 수 없지 않은가.

어둠속에서도 경풍할 변괴에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어머니 앞에서도 보인 법 없는 몸뚱이를 하고 옷으로 덮으려 하나 생각뿐이다. 어머니는, 하고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니 웃목에 누웠고 그 너머로 동생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같은 방에 세 사람씩이나 산 넋이 있으면서도 날도둑을 들게 하다니 멀건 등신들이라고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은 된 낮일에 느그라져서 함빡 단잠에 취하여 있는 것이다. 발로 차서 어머니를 깨우고도 싶으나 발이 닫기에는 동이 떴다.

삼경이 넘었을까 밤은 막막하다. 열린 문으로는 바람 한숨 없고 방안이나 문 밖이 일반으로 까마득하다. 먼 하늘에는 별똥 하나 안 흐른다.

“원망할 것 없다. 둘만 알고 있으면 그만야. 내가 누구든 - 아무에게나 다 마찬가진걸."

더운 날숨이 이마를 덮는다. 부스럭부스럭 하더니 저고리 고름을 올개미지워 매어주는 눈치다.
간단하고 감쪽같다. 도둑은 흔적없이 <훔칠 것>을 훔치고 늠실하고 나가버렸다.

몸이 풀리우자 분녀는 뛰어일어나 겨우 입 봉창을 빼기는 하였으나 파장 후에 소리를 치기도 객쩍다.

대체 웬 녀석인가. 뛰어나가 살폈으나 간 곳 없다. 목소리로 생각해보아도 알 바 없고 맺혀진 옷고름을 만져보는 건 뜻 없다. 하늘이 새까맣다. 그 새까만 하늘이 부끄럽고 디딘 땅이 부끄럽고 어두운 밤을 대하기조차 겸연스럽다.

몸이 무시근하다. 우물에서 물을 두어 드레 퍼올려 얼굴을 씻고 방에 들어가 등잔에 불을 켰다. 어둠속에서 비밀을 가진 방안은 밝을 때엔 천연스럽다. 땅 그 어느 한구석이 무지러 떨어졌을 것 같다. 하늘의 별 한 개가 없어졌을 것 같다. 몸뚱이가 한구석 뭉쳐 이지러진 것 같다.

반쪽 거울을 찾아들고 얼굴을 비치어보았다. 코며 입이며 볼이며가 상하지 않고 제대로 있는 것이 도리어 신기하게 여겨졌다. 어차피 와야 할 것이겠지만 그것이 너무도 벼락으로 급작스리 어처구니없게 온 것이 분녀에게는 알 수 없이 겸연스러웠다.

얼굴과 몸을 어루만지며 어머니의 잠든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려니 별안간 소름이 끼치며 가슴이 떨린다. 무서운 생각이 선뜻 들며 어머니를 깨우고 싶다. 그러나 곤한 눈을 멀뚱하게 뜨고 상기된 눈방울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을 보면 분녀는 딴소리밖엔 못하였다.

“새까맣게 흐린 품이 천둥하고 비올 것 같으우."

묘포 감독 박추의 짓일까. 데설데설하며 엄부렁한 품이 아무 짓인들 못할 것 같지 않다. 계집아이들 틈에 끼어 인부로 오는 명준의 짓일까. 눈질이 영매스러운 것이 보통 아이는 아니나 워낙 집안이 억판인 까닭에 일껏 들어간 중등학교도 중도에서 퇴학하고 묘포 인부로 오는 것이 가엾긴 하다. 그러나 그라고 터놓고 을러멨다고 하면 응낙할 수 있었을까. 군청 사동 섭준이나 아닐까. 한길에서도 소락소락 말을 거는 쥐알봉수. 그 초라니라면 치가 떨려 어떻게 하나.



등록 사용자만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왼쪽메뉴에서 로그인하거나 사용자등록하세요
+/- 댓글

3.23 Copyright (C) 2007 Alain Georgette / Copyright (C) 2006 Frantisek Hliva. All rights reserved."

최종 업데이트 ( 2008년 5월 16 금요일, 0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