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3 of 6
"글쎄 천천히 먹으면 어때서 그렇게 발광이냐." 하시며 상을 찌푸리시고 할멈이 집어주는 걸레를 집어 나의 아우의 바지 앞을 털어주신다. 때가 묻은 바지 앞을 엉거주춤하고 내밀고 있는 나의 아우는 다만 두 팔만 벌리고 서서 아무 말이 없다.
나는 미안하였던지 동생의 철없이 날뛰는 것이 우스워 그리하였던지 밥은 먹지 못하고 다만 상에서 저만큼 떨어져 앉았다가 석유등잔에 불만 켜놓고서 다시 밥상으로 가까이 올 때, "에그, 다리 아퍼. 저녁을 인제야 먹니?" 하며 마당으로 들어오는 이는 우리 동생 할머니시다.
손에는 남으로 만든 책보를 들고 발에는 구두를 신고 머리를 쪽진 데는 은비녀를 꽂았다. 키가 작달막한데다가 머리가 희끗희끗한데 검정 치마가 땅에 거의거의 끌리게 된 것을 보니까 아마 오늘도 꽤 많이 돌아다니신 모양이다.
"어서 오십시요." 하며 들던 숟가락을 놓고 일어나시는 이는 우리 어머니시다.
"마님 오십니까." 하고 짚세기를 신는 이는 할멈이다. 마루창이 뚫어져라 깡총깡총 뛰며 "할머니 할머니."를 부르는 것은 나의 아우다. 나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다만 빙그레 웃으면서 반가와하였다.
마루 끝에 할머니는 걸터앉으셨다. 할멈은 걸레로 마루바닥을 훔치는 사이에 어머니는 부엌으로 내려가셨다. 그릇 소리가 덜거덕덜거덕 난다. 피곤한 가슴을 힘없이 내려앉히시며 한숨을 휘이 하고 내쉬신 할머니는 무슨 걱정이나 있는 듯이 부엌을 향해서,
"고만두어라. 내 밥은 아직 먹고 싶지 않다." 하신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상을 차리시더니,
"왜 그러세요. 조금 잡숫지요."
"아니다. 저기서 먹었다. 오늘 교인심방을 하느라고 명철(明哲)이 집에 갔더니 국수장국을 끓여내서 한 그릇 먹었더니 아직까지도 배가 부르다."
어머니는 차리던 상을 그대로 놓고 부엌문에서 나오며,
"명철이 집이요, 그래 그 어머니가 편찮다드니 괜찮아요?"
"응 인제는 다 낫드라. 그것도 하느님 은혜로 나은 것이지."
우리 할머니는 그 동네 교회 전도부인이시다. 우리 집안은 본래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가 좋지 못하여 따로따로 떨어져 산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열심 있는 교인이요, 진실한 신자이지마는 우리 아버지는 종교(현대 사회에서 명칭하는)에 대하여 냉혹한 비평을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본래 교육이 있지 못하다. 있다 하면 구식 가정에서 유교의 전통을 받아오는 교육이었을 것이며, 안다 하면 한문이나 국문 몇 자를 짐작할 뿐이요, 새로운 사조와 근대사상이라는 옮기기도 어려운 문자가 있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열두 살 되던 그 해에는 다만 우리 할머니를 한개 예수 믿는 여성으로 알았었으며, 하느님이 부리는 따님으로만 알았었다. 종교에 대한 견해라든지 신앙이란 여하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나도 예수교 학교를 다니므로 자기의 선생을 절대로 신임하고 자기의 학교의 교풍을 절대로 존중하였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에 흘렸던 붉은 피가 참으로 우리 인생의 더러운 피를 씻었으며 수염 많은 할아버지 같은 하느님이 참으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계신 줄 알았었다.
날마다 아침 성경시간과 주일학교에서 선생에게 들은 바가 참으로 나의 눈앞에 환상으로 나타났었으며 유대 풍속을 그린 성화가 과연 천당, 지옥, 성지, 낙토의 전형으로 보이었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떻든 무슨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니 천사를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서양여자를 그린 그 채색 칠한 그림이 나의 눈앞에 나타나 보이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간 것을 생각할 때에는
시뻘건 육괴(肉塊)가 시안(屍眼)을 부릅뜨고 초민(焦悶)과 고통의 극도를 상징하는 그의 표정과 비린내 나고 차디찬 피가 흐르는 예수의 죽음이 만인의 입과 천년의 세월을 두고 성찬 성찬 하며 추앙경모의 그 부르짖음의 소리가 그 어린 나의 귀와 나의 심안에 닿을 때에도 그것은 고통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초민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비린내 나는 붉은 피 보혈로 보이었으니 무서운 시체를 그린 그 그림이 도리어 나의 어린 핏결 속에 무슨 신앙을 불어넣어 주었었다.
그때의 나의 기도는 하느님이 들었으며 그때의 나의 죄는 예수가 씻었었다. 그것이 결코 지금의 나를 만족시키며 지금 나에게 과연 신앙을 부어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열두 살 되는 그때의 나의 영혼은 있는지 없는지도 판단치 못하던 하느님이 지배하였었으며 이천 년 옛날에 송장이 되어 썩어진 예수가 차지하였었다.
그때의 나의 영혼은 나의 영혼이 아니고 공명(空名)의 하느님의 것이었으며 그때의 나의 생은 나의 생이 아니며 촉루까지 없어진 예수의 생이었다. 그때의 나는 약자이었으며 그때의 나는 피정복자이었다. 무궁한 우주와 조화를 잃은 자이었으며 명명(暝暝) 무한대한 대세계에 나의 생을 실현할 능력을 빼앗긴 자이었다.
명명한 대공을 바라볼 때에 유대식 건물의 천당을 동경하였을지라도 자아심상의 낙토는 몰랐으며 사후의 영생은 구하였을지라도 생하여서 영생을 알지 못하였다. 사는 생의 척도됨을 알지 못하고 생이 도리어 사후의 희생으로 알았었다.
산상의 교훈과 포도동산의 교훈을 듣기는 들었으나 열두 살 먹은 나의 호기심을 끌기에 너무 현묘하였으며 애(愛)의 복음과 자아의 희생을 역설함을 듣기는 들었으나 나에게 과연 심각한 감화를 주지는 못하였었다. 성경의 해석은 일종의 신화로 나의 귀에 들렸으나 그 무슨 신앙을 주었으며 성화를 그린 종이조각은 한개 완구가 되었으나 빼기 어려운 우상을 나의 심전에 그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