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 - 김동인

2008년 8월 04 월요일, 16:42 오피오카네 중/장편 소설 - 한국 중/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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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933년 4월부터 1934년 2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대수양(大首陽)>과 더불어 김동인의 대표적인 역사소설로 꼽힌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은 대원군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조선 말의 복잡한 내외 정세를 그렸다. 흥선군을 영웅화하여 본격적인 역사소설 수준에는 못 미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 당시의 시대상을 파헤치는 데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 소개]

김동인(金東仁, 1900~1951) : 한국 근대문학의 성립 과정에서 문단을 주도했던 이광수 식의 계몽적 교훈주의에서 본격적으로 탈출을 시도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예술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이른바 본격 근대문학의 확립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관은 전주.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人) 춘사(春士).




1. 운현궁의 곡성

무술(戊戌)년 이월 초이틀이었다. 정월부터는 봄이라 하되 이름이 봄이지, 이월 중순까지도 날이 춥기가 여간이 아니었다. 아침저녁은커녕 낮에도 혹혹 쏘는 바람이 나무등걸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길이며 뜰에 널린 나무 부스러기며 종이조각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날 운현궁(雲峴宮) 안의 공기는 그다지 좋지 못하였다. 무슨 커다란 수심이 있는 듯이, 하인들이 동으로 서으로 분주히 왕래하며, 구석마다 모여서 무엇이 근심스러운 듯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오정이 지나면서부터는 하인들의 수선거리는 것이 더욱 심하였다. 연하여 밖으로 심부름을 나가는 하인들이 있었다. 대궐이며 각 궁이며 권문들에서도 연하여, 혹은 대감 혹은 청지기들이 운현궁으로 왔다.

밖의 싸늘한 바람은 더욱 강하여졌다. 펄펄 종이조각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햇빛도 그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였다. 휙휙거리는 바람소리도 꽤 강렬하여, 뜨뜻이 불을 땐 방안에서라도 그 소리만 들어도 추위를 느낄 만하였다.

그런 심한 바람 가운데서도 무엇이 분주한지 무엇이 근심스러운지, 하인들은 방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뜰을 수군거리며 왕래하였다.

문득-

안에서 곡성이 울려 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한 마디에서 시작된 그 곡성은 삽시간에 퍼졌다. 내전, 사랑 할 것 없이 그 곡성은 삽시간에 전파되어 온 궁내가 곡성으로 화하였다. 궁 밖으로 모여든 많은 백성들이 궁문 밖에서 근심스러운 얼굴로 손을 읍하고 서 있었다. 궁에서 사람이 나올 때마다 백성들은 무슨 말이라도 나올까하여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심스러운 소식, 듣기 싫은 소식, 그러나 또한 십중팔구는 반드시 나올 소식을 그들은 겁먹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귀에도 그 궁 안에서 나오는 곡성이 들렸다.

"운명하셨다!"

누구의 입에선가 이런 말이 나왔다. 모두들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들의 깨끗한 옷이 더럽힌다 하지 않고 땅에 꿇어앉았다.

"가셨구나!"

"대감 가셨구나!"

궁 안에서 시작된 통곡성은 밖에서도 화창되었다.

이 날이 조선 근대의 괴걸이요, 유사 이래 어떤 제왕이든 감히 잡아보지 못하였던 '절대'적 권리를 손에 잡고 이 팔도 삼백여 주를 호령하며, 밖으로는 불란서, 미국, 청국들을 내리누르고, 안으로는 자기의 백성의 복지를 위하여 그의 일생을 바친 흥선 대원왕 이하응(興宣大院王李昰應)이 별세한 날이다.

조선 오백 년 역사에 있어서 조선을 사랑할 줄 알고, 왕가와 서민, 정치가와 백성, 웃사람과 아랫사람의 지위를 참으로 이해한 단 한 사람인 우리의 위인 이하응이 그 일생을 마친 날이다.


2. 망할 놈의 강아지

2. 망할 놈의 강아지

"우-위!"

내일 모레면 섣달 그믐이라는 대목이었다.

어떤 길모퉁이에서 한 취객이 큰길로 나왔다.

"우-위!"

꽤 깊은 밤이었다. 큰길이라야 당시의 장안의 길은 그다지 크지를 못하였다. 게다가 허투루 내버린 물이 모두 얼어서 미끄럽기가 짝이 없었다.

"취하는군!"

꽤 취한 모양이었다. 걸음걸이가 그야말로 이보 전진 일보 후퇴였다. 한 걸음 나가서는 팔짱을 지르고 몸의 중심을 잡으며 한참씩 서서 있고 하였다.

근본은 양반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행색이 초라하기가 짝이 없었다. 해어진 도포, 떨어진 갓, 어느 모로 뜯어보든지 한 표랑객에 지나지 못하였다.

개가 한 마리 따라오면서 짖었다. 마치 물고 늘어지려는 듯이 그에게 달려들면서 짖었다.

그는 비틀거리던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초라한 옷, 작다란 몸, 어디로 보아도 시원치 못한 이 취객은 자기에게 달려드는 개를 굽어보았다.

취객을 짖던 개는 그 취객이 돌아서므로 따라오던 걸음을 멈추고 뒷다리를 버티고 이제라도 취객의 목을 향하여 올라뛸 듯한 자세로 잠시 마주보았다.

취객은 개를 돌아보았다. 돌아볼 동안 아직껏 비틀거리던 그의 몸이 멎었다. 그는 자기에게 달려드는 개를 호령을 할지 어를지 주저하는 모양이었다.

이 주저하는 양을 개는 알아보았다. 잠시 뒷다리를 버티고 겨누고 서 있던 개는, 한 소리 지르며 취객의 몸을 향하여 올라 뛰었다.

순간이었다. 취객은 몸을 비켰다. 자기가 몸을 비키기 때문에 올라 뛰다가 도로 떨어지는 개에게 향하여 그의 호령이 내렸다.

"요 망할 강아지!"

놀랍게 우렁찬 음성이었다. 그 초라하고 왜소한 취객의 어디서 그런 우렁찬 소리가 나는가 의심할 만큼 놀라운 소리였다. 대지가 울리었다. 하늘까지 울리는 듯하였다.

그 우렁찬 소리에 놀란 것은 그를 물려고 달려들었던 개였다. 개는 이 우렁찬 소리에 위압되어 힐끗 그를 향하여 돌아는 섰지만, 잠시 멍하니 그 취객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개는 취객을 쳐다보았다. 취객은 개를 굽어보았다.

잠시 개를 굽어보고 있던 취객은 오른편 발을 들었다가 땅을 쿵하니 내리찧었다.

"저리 가!"

한 마디의 호령이나마 이 취객에게 위압된 개는 즉시 복종하였다. 개는 잠시 더 취객을 쳐다보다가 슬며시 꼬리를 내려 끼고 돌아서 버렸다. 그리고 여음과 같이 두어 마디 더 킹킹 짖어보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망할 놈의 강아지, 남의 술을 다 깨우는군!"

취객은 그 개 때문에 취기가 깨는 것을 애석히 여기는 듯이, 길다랗게 숨을 한번 쉰 뒤에 다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곳에서 발을 뗐다.

"우-위! 백설이 만건곤하니..."

아까 어느 기생집에서 기생이 부르던 노래를 코로 흥얼거리면서 얼음진 대지를 비틀비틀 어두움 가운데로 사라졌다.

-낙척 시대의 흥선군 이하응(李昰應)이었다.

후일에 조선 팔도 삼백 주를 호령하던 대원군, 당시의 한 가난한 종친에 지나지 못하는 흥선군 이하응은 취한 걸음을 비틀비틀 옮겼다. 향하는 곳은 경운동 자기의 집이었다.

 


 

3. 명색이 왕족의 한 사람

왕족의 한 사람으로 흥선도 자라서는 봉군(封君)이 되어 '군'이라는 명칭은 붙어서 흥선군이라는 명색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세력 없고 그 위에 당시의 권문인 김씨 일족이며 그 밖 권도가들에게 멸시를 받고, 거리의 무뢰한들과 짝하여 술이나 먹고 투전이나 하러 다니는 그는 어디로 본든지 일개의 표랑객이지 왕족으로 보이지 않았다.

단지 때때로 뜻없이 호령을 할 때나, 혹은 무슨 마음에 맞지 않는 일 때문에 획 돌아서고 말 때에 그의 무서운 위압력이, 얼핏 보아서 범인이 아닌 그림자가 눈 밝은 사람에게는 보이는 뿐이었다.

가난한 종친, 권세 없는 왕족 - 이 주정뱅이 공자는 어두운 밤 바람 찬거리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자기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레가 그믐이라, 떡쌀이나 있나?"

물론 없을 것이었다. 떡쌀은커녕 내일 아침 조반쌀이 있을지 없을지도 의문이었다. 아침에 부인에게 꼭 좀 마련하여 오란 당부를 단단히 받고 나온 흥선군은, 나오다가 어떤 술친구를 만나서 술친구가 끄는 바람에, 부인의 당부도 잊어버리고 어떤 기생집에서 진일을 술로써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부인의 당부는 잊었던 것이었다.

술 때문에 얼마만큼 마음이 호젓하게 된 그였지만, 발이 집에 가까워짐을 따라서 흥그럽던 마음이 차차 무거워졌다. 그리고 마음의 무거움은 발로 전염되어 발의 걸음도 차차 무거워졌다.

"우--위! 취하는군!"

타성으로 다시 한번 트림을 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아까 개의 사건과 차차 가슴을 무겁게 하는 근심에 취기도 꽤 깨었다.

금옥낭청에 운학선은 바라지 않는 바다. 그러나 종친 공자로서 쌀 걱정, 설 지낼 걱정까지 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이게 어찌 된세상이냐? 태조의 거룩한 피를 물려받은 자기로서, 어디 개뼉다귀인지 알 수도 없는 외척들에게 눌리어서 감히 머리도 들지를 못하니 이것이 무슨 세상이냐?

비틀거리던 걸음걸이도 이제는 바르게 되었다. 추위도 막기 겸, 비틀거리는 걸음에 중심도 잡기 겸, 깊이 팔짱을 지르고 머리를 가슴에 묻고 길을 걷던 그는 활개를 펴고 머리까지 높이 들었다.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느니...."

시조라 할까 노염의 부르짖음이라 할까, 이때 그의 입에서 나온 이 소리는 해석할 자 없었다.

명문 민씨의 가문에 태어난 부인은 짜증을 부린다든가 바가지를 긁는 다든가 그런 여도(女道)에 벗어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설을 지낼 쌀이 떨어진 집안의 주부로서 화평한 얼굴은 할 수가 없었다.

술이 취하여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흥선을 부인은 미소로 쳐다보았다.

"어디서 잘 잡수셨구료?"

마음의 모든 불평과 불만을 '여덕(女德)'이라는 커다란 보자기로 싸고 온순과 인종이란 미덕으로써 장식한 귀여운 마음씨였다.

여기 대하여 흥선은 부끄러운 듯이 외면을 하여 버렸다. 그 미안을 감추기 위하여,

"어, 취하는군!"

하면서 추운 듯이 몸을 한번 떨었다.

부인이 물었다.

"나가셨던 일은 마음대로 되셨습니까?"

결기 있는 흥선군이었다. 부인에게 이런 채근을 받을 때에 이전과 같으면,

"되고 안되는 것을 여편네가 참견할 것이 아니오."

하고 튀겨 버릴 것이었다. 그러나 돌아오기 전부터 벌써 꽤 미안함을 느끼고 있던 흥선은 힐끗 곁눈으로 부인을 한번 본 뒤에,

"내일 되겠소. 날도 춥기도 하다."

하면서 한번 너털웃음을 웃었다.

내일이라 말은 하였다. 그러나 흥선에게는 내일이 아니라 열흘을 연기할지라도 과세 준비를 할 플랜이 서지를 않았다.


 4. 쌀 한 되를 청하여 볼 집

4. 쌀 한 되를 청하여 볼 집

김 모, 민 모, 홍 모, 조 모, 이 모, 지금의 세가요. 지금의 금만가인 수없는 사람의 이름과 형지가 어른어른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갔지만, 그 아무한테도 가서 지금 자기의 궁경을 호소할 곳이 있음직도 안했으며, 호소할지라도 그 호소에 얼마만큼이라도 동정하여 줄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부인에게 향하여 내일이면 되리라고 너털웃음으로 넘겨 버리기는 하였지만 그 내일 일이 딱하기 가이 없었다.

모든 일이 딱하고 기막힌 흥선은 다시 부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어서 자리에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이튿날, 이 파립폐의의 공자의 모양은 다시 거리에 나타났다. 상갓집 개와 같이 가는 곳마다 구박을 받는 이 공자는, 그래도 행여 구박하지 않는 고마운 세가가 하나 있지 않나 하여, 대목의 바람 찬 거리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각 척신(戚臣)과 세가(勢家)며 노론(老論)·소론(少論)·남인(南人)·북인(北人)의 틈에 끼여서 돈 없고 세력 없는 이 공자는 기침 한번을 크게 할 수가 없고, 아무리 굶어 죽는다 할지라도 어디 가서 쌀 한 되를 청하여 볼 집이 없었다. 그러나 섣달 대목을 다하여 몰려올 빚쟁이도 피할 겸 부인에게 맹세도 한 체면상,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과세의 준비를 좀 해 가지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날이다.

'사람의 종자는 거리에 우글우글하되 나 갈 곳은 없구나!'

거리를 둘러보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쁜 듯이 왕래를 하며, 벽제 소리 요란하게 저편 앞에는 어떤 세가의 행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에, 이 공자의 입가에는 쓴웃음의 자취가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를 거리를 헤매고 있던 이 공자의 작다란 몸집은, 그날 낮 좀 지나서 권문 팽 경장(彭景長)의 집 사랑에 나타났다.

"대감, 그간 무양하시오?"

인사를 하는 체면상 흥선의 얼굴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 바야흐로 안하지 않을 수 없는 창피하고도 괴로운 말 때문에 그의 미소의 뒤에는 고통의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두세 문객을 앞에 앉히고 아랫목 안석에 기대어 비스듬히 앉아 있던 경장은, 힐끗 눈을 굴려서 흥선을 바라보았다. 검은자위보다도 흰자위가 많은 눈찌였다. 무엇하러 왔느냐는 표정이었다.

그 경장의 흰 눈자위에 향하여 다시 한 번 미소하여 보이지 않을 수가 없는 흥선이었다. 흥선은 또 한 번 미소하였다.

"에이, 날도 지독히 춥게 되었습니다."

하면서 손을 비비며 웃목에 종그리고 앉았다.

지벌로 보아서 거기 있는 문객들은 당연히 흥선보다 아랫사람이매, 들어오는 흥선에게 대하여 당연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그러나 세가 팽 판서의 문객인 그들의 눈에는, 가난하고 세력 없는 이 공자는 사람으로 보이지조차 않았다. 한번씩 힐끗 돌아본 뒤에는 모두 흥선에게는 등을 지고 말았다.

팽도 무론 흥선을 대척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인사에 대하여 한 번의 대답도 안 하였다. 그리고 차디찬 일별을 다시 한번 흥선의 위에 던진 뒤에 둘러앉은 문객들과 아까의 이야기를 계속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책망을 하지 않았겠소? 아 참, 어이가 없어서..."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른다. 좌우간 팽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사뭇 우스운 듯이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둘러앉았던 무리들도 이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허리가 끊어질 듯이 웃고들 있었다.

웃목에 종그리고 앉은 흥선은 이제 자기의 거취를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앉은 이상 이제 일어서서 다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앉았자니 누구 하나 자기를 대척하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경솔히 앉았던 것부터가 실수였다. 아니, 이 집에 들어온 것, 그보다 더 앞서서 누구의 힘을 힘입으려던 것부터가 실수였다. 이러한 냉대를 받을 것은 당연히 예측이 될 것이어늘, 구구히 남의 집을 찾을 생각을 내었던 것부터가 실수였다.

다시 일어설 수도 없고 그냥 앉아 있을 수도 없게 된 흥선은, 자기의 거취를 찾지를 못하고 다시 아랫목에서 계속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5. 세도가에서의 수모

팽과 그의 문객들은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아까의 이야기를 그냥 계속하였다. 때때로 팽이 웃었다. 그러면 문객들은 허리가 끊어질 듯이 웃고 하였다. 그다지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가 분명하지만, 팽이 웃기만 하면 문객들은 이 세상에 다시없는 우스운 이야기인 듯이 방바닥을 두드리며 웃고 하였다.

웃목에 웅크리고 앉은 가난하고 세력 없는 공자 흥선의 가슴은 타는 듯하였다. 오래 겪어 온 모멸이며, 경험하고 또 경험한 수치이며, 너무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모멸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이 마비된 흥선이로되, 오늘은 유난히도 가슴 쏘았다. 일어서려 일어서려 몇 번을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그저 일어서기도 너무 싱거웠다. 여기서 일어서려면 땅을 한번 차고 발을 한번 구른 뒤에 왜가닥 하니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그러나 몸은 아무리 왕가의 피를 받은 흥선이로되, 권도로서 도저히 팽의 뒤 천 보를 따를 수 없는 그는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도로 나가려도 나갈 만한 볼미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아랫목에서는 한 토막의 이야기가 끝이 난 모양이었다. 팽이 앞에 놓였던 길다란 담뱃대를끌어 당겼다. 그러매 그의 앞에 있던 한 문객은 황급히 담배를 담아 바쳤다. 유황 성냥을 황급히 화로에 긋는 사람도 있었다. 한 대의 담배에 대하여 경쟁하듯이 제각기 팽의 심부름을 하였다.

팽은 담배를 붙여 물었다. 삼등초(三登草)의 푸르른 연기가 한순간 그의 얼굴을 감추었다. 그 연기가 사라지기 시작하렬 때에 팽은 비로소 흥선에게 향하여 첫 말을 던졌다.

"아 참, 대감 언제 오셨소?"

흥선이 온 것을 이제사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마음이 이리 끓고 저리 끓던 흥선이었다. 그러나 오랜 동안의 그의 습관으로 그의 얼굴에는 이때에 비굴한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 왔습니다. 날도 몹시 차게 되었습니다."

팽의 얼굴에 어리어 돌던 연기가 사라졌다. 두 번째의 연기가 다시 그의 얼굴을 덮었다. 그 가운데서 팽은 두 번째의 말을 던졌다.

"이즈음 어떠시오? 방에 불이나 때구 살으시오? 아이구 얼어서 면상이 모두 허옇게 부었군."

지극한 모멸(侮蔑)의 말이었다. 흥선의 얼굴에는 칵 피가 피어올랐다. 숨까지 딱 막히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노염을 눌렀다. 숨까지 딱 막히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노염을 눌렀다. 그리고 그 팽의 말에 달려 늘어졌다.

"대감,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오? 이즈음 곤란하여 참 죽을 지경이외다."

"참 그럴 걸! 내 좀 돌려 드릴까?"

"네, 그러면 고맙겠습니다."

"얼마나? 한 두어 돈이면 될까?"

팽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좌중 문객들에게서 돈을 수렴하려는 눈치였다.

문객들은 눈치가 빨랐다. 팽이 둘러보는 기수에 제각기 얼른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졌다. 한 문객이 팽의 앞에 돈 두 돈을 웃음과 함께 공손히 바쳤다. 팽은 그 돈을 받았다. 한 닢 두 닢 세어 보았다. 그런 뒤에 웃목에 있는 흥선에게 향하여 스무 닢의 엽전을 뿌려 던졌다.

"과세나 잘 허우."

아랫목에서는 집이 무너져 나갈 듯이 웃는 소리-

흥선은 눈과 코와 귀가 모두 아득하여졌다. 아랫목에서 여러 사람이 크게 웃는 소리가 마치 십리 밖에서 나는 소리같이 작다랗게 들렸다.

흥선은 일어섰다.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여 문을 열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의 등을 향하여 웃음소리가 또 한번 굉장히 울렸다.

"퉤!"

입을 벌리기 조차 추운 겨울날이었다. 바람이 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극도의 분노와 불쾌 때문에 입의 침이 죽과 같이 걸게 된 흥선은, 연하여 얼어붙은 땅에 침을 뱉으며, 어디인지 자기로도 목적이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쌀? 과세? 그런 문제는 이제는 생각도 않았다. 어디 개뼈다귀인지 알지도 못하는 팽 경장에게 수모를 받고, 거기 모여 있는 하향 천인들에게 웃기운 것이 분하기가 짝이 없었다.

"이놈들을!"

아아, 마음대로 하자면 뼈를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일이다. 그러나 뻔히 자기로서는 어찌하지 못할 일임을...


 

6. 벽제 소리

이런 때에 임하여 이 온갖 고난과 수모를 다 겪고 또 겪은 흥선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상감께는 가까운 혈기가 안 계시다. 상감 승하하신 뒤에는 이 팔도 삼백 주의 어른이 될 분은 당연히 종친 중에서 골라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아, 장래에 만약 그런 날이 생긴다면 - 자기에게는 아들이 있다. 종친 중의 한사람인 자기에게는 장래 이 나라의 통치자로서 아무 부끄러움이 없을 훌륭한 아들이 있다. 그때 만약, 만약...

팽? 김? 민? 이? 이 세상에 두려울 자가 누구랴. 지금 자기들이 이렇듯 수모한 팽도 그날에는 땅에 코를 끌면서 자기에게 절하리라.

추위도 감각하지 못하였다. 자기가 걷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였다. 분노와 망상 때문에 흥선은 머리를 가슴에 푹 묻고 땅만 내려다보며 연하여 퉤 퉤 침을 뱉으며 걸었다.

이 망상에 빠져서 제 정신을 못 차리는 흥선의 귀에 그의 분노를 더욱 돋우려는 듯이 저편 길 모퉁이에서 벽제 소리가 요란히 나기 시작하였다.

"물렀거라, 비켜라! 에 - 이놈들, 모두 앉거라!"

그 요란스럽고 호기 있는 벽제 소리로 미루어, 어떤 권문의 행차인 것이 짐작되었다. 아직껏 깊이 머리를 가슴에 묻고 걷던 흥선은 그 머리를 번쩍 들었다.

분노에 불붙는 눈자위였다. 작은 몸집이나마, 초라한 행색이나마, 그 흥분된 눈을 치뜰 때에는, 그 눈에는 장래 이 삼백여 주를 호령한 운현 대감 이하응의 위엄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어떤 놈 - 이 벽제 소리 요란히 지나가는 놈은 또 어떤 놈이냐? 마주서서 욕하고 꾸짖을 신분은 못 되나마, 하다못해 벽제 소리를 향하여서라도 노염의 눈을 던져 보자는 것이었다.

행차는 가까워 왔다. 대제학(大提學) 김병학(金炳學)의 행차였다.

 

"자, 추운데 이 아래로 쑥 내려오시지요."

대제학 김병학의 사랑, 권하는 사람은 주인 병학이요, 권을 받는 사람은 파립폐의의 흥선이었다.

팽에게 받은 수모 때문에 머리가 거의 혼란하게 되었던 흥선은, 또한 이 뜻하지 않은 병학의 호의에 경이의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이 방에 불을 더 때라. 자, 대감 담배나 붙이시오. 여보게, 대감께 얼른 담배 붙여 올리게."

사면을 지휘하여 흥선을 환대하려는 눈치가 분명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뜨거운 방에 불까지 더 때라고 야단이었다.

흥선은 눈을 들어 병학을 바라보았다. 상갓집 개와 같이 가는 곳마다 수모와 멸시만 받는 이 공자는 병학의 환대와 호의가 고맙기보다 오히려 무시무시하였다. 눈을 부릅뜨면 해라도 그 빛을 흐리게 할 만한 병학으로서, 아무 돌아볼 것이 없는 자기에게 이런 호의를 쓴다는 것이 흥선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기적이었다.

흥선은 잠시 병학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의 명령에 의지하여 공손히 바치는 담배를 흥선은 받아서 피웠다. 가난에 가난을 거듭한 몇 해, 수수밭 귀퉁이에 심었던 쌍담배에나 익은 흥선의 입에는 좀 과히 독한 성천초(成川草)였다. 재채기가 나려 하였다.

"대감, 이즈음 어떠십니까?"

무슨 소리를 하느냐? 내 살림이 곤궁할 것은 너희들이 번히 아는 바가 아니냐? 내 쓴 갓을 보아라. 내 입은 옷을 보아라. 휘늘어진 비단옷에 싸인 병학을 흥선은 대답 없이 그냥 바라만 보았다. 그러나 대답 없는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였다.

'걱정 마오. 당신네의 덕분에 잘 사오. 딸 잘 둔 당신네 집안보다는 조상 잘 둔 우리 집안은 좀 못하기는 하지만 굶지는 않소.'

흥선의 입이 비로소 열렸다.

"조상이 막여(莫如) 딸이라--대감은 이런 쌍문자 아시오?"

비틀어진 미소 아래서 새어나온 물음이었다.

병학은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시정의 무뢰한 가운데 섞여서 시민들의 쌍말과 수담과 재담과 해학에 능한 이 타락한 공자의 기상천외의 질문은, 명문 김병학에게는 알지 못할 말이었다. 잠시 눈을 크게 하고 흥선의 얼굴을 바라본 뒤에 씩 웃고 말았다.

흥선의 입가에 떠돌던 비틀어진 미소는 드디어 홍소로 변하였다.

"하하하하! 조상이 막여 딸이라--하하하하, 하하하하!"

폭발된 노염 띤 홍소였다. 처치할 곳 없는 분노를 홍소로써 처치하려는 것이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대감 모르시는구려. 우리 쌍놈이나 알지 대감이 어떻게 그런 문자를 하시겠소?"

체기가 내려가는 것같이 흥선의 가슴은 얼마만치 시원하였다. 허리가 끊어질 듯이 웃고 있는 객과, 눈을 둥그렇게 하고 있는 주인 - 이 방에는 잠시 이상한 기분이 떠돌고 있었다.


 7. 김병학과의 술자리

"불로초로 술을 빚어 만년배에 가득 부어......"

"자 대감, 잔을 드세요."

기생이 부르는 권주가를 따라서 병학은 흥선에게 술을 권한다.

흥선은 잔을 들었다. 연거푸 마셨다. 또 먹고 연거푸 먹었으나 취기는 도무지 돌지 않았다.

아니, 취기가 돌지 않았다면 어폐가 있다. 취기는 돌았으나 - 취기가 돌기 때문에 정신은 더욱 똑똑하여 갔다.

공복에 독한 술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의 머리는 여간 어지럽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세 가지의 생각이 엉키어서 돌아갔다. 팽의 집에서 받은 수모, 그 기억이 더 확대되어 그를 괴롭게 하였다. 잔을 들다가도 그 잔을 도로 놓고 킁킁 코를 울리곤 하였다.

병학의 이 환대가 또한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아무 환대 받을 까닭이 없다. 자기는 아무리 종친이라고 하나 세력 없고 돈 없는 - 시정에 배회하는 한낱 부랑자요, 저편 쪽은 나는 새라도 떨굴 만한 세력가이어늘, 무슨 까닭으로 오늘 이렇듯 자기를 환대하나? 아까도 어떤 그렇지 못할 손님이 온 것도 '일이 있어 못 만나겠다'고 그냥 돌려보내고 자기를 환대 하니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이 문제도 그의 머리를 꽤 어지럽게 하였다.

셋째는 자기의 가사 문제였다. 아까는 팽에게 대한 분노 때문에 거기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었으나, 술 때문에 머리가 사면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그에게는, 지금 그 가사 문제가 머리에 걸리어 돌아갔다.

집을 나올 때에 부인은 중문까지 따라 나오면서 그를 바래주었다. 점잖은 집 부인이라, 그 뜻을 입 밖에까지 내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꼭 좀 마련하여 오라는 당부에 틀림이 없는 것은 흥선도 잘 알았다. 그러나 어디서?

이제는 어디 가서 말해 볼 용기도 없었다. 바로 굶어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다시는 거기에 대하여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입을 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또한 어떻게 해서든 마련하지 않으면 또 안 될 일이었다.

병학에게 말하여 볼까, 이렇듯 자기를 환대하는 것을 보면 자기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호의를 가지고 있다 치면 팽과 같이 자기를 망신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술기운도 합하여 좀 용기를 얻은 흥선은, 몇 번을 이렇게 마음먹고 입을 열려 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급기 입을 열려면 차마 벌어지지를 않곤 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생각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기가 짝이 없는 흥선은, 그 분풀이라는 듯이 연하여 술만 공격하였다. 병학은 끊임없이 권하였지만 병학이 권하기 전에 흥선은 잔을 들고 하였다.

"대감 어떠세요?"

병학이 이렇게 물을 때에 흥선은 방금 받은 잔을 땅 하니 상에 놓으며, 추기를 한꺼번에 토하고 머리를 번쩍 들었다.

"나 늘 먹는 막걸리보다는 맛이 좀 낫소."

하고 무엇을 찾았다.

"대감!"

"네?"

"한참 앉아서 보아야 지금이 대목인데 이 댁에는 빚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으니, 대체 대감은 빚을 안 지셨소? 혹은 지고도 받으려 못 오게 하는 묘책이라도 있소?"

병학은 눈을 크게 하였다. 그 뒤에 눈을 삼박거렸다. 이 질문을 그냥 웃어 버릴지 혹은 변명이나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른 것이었다.

뒤따라 흥선의 말이 그냥 계속되었다.

"만약 받으러 못 오게 하는 묘책이라도 있으면 내게 좀 전수를 하시오. 오늘 당장부터라도 써먹어야겠소."

눈만 삼박거리던 영초(穎樵) 김병학은 싱겁게 씩 웃었다. 그리고 기생에게 흥선이 놓은 술잔을 눈짓하였다.

"자, 약주나 드세요."

"아니, 술이 아니라 하 이상해서 그러오. 대목이면 빚쟁이들이 대문이 메어서 들어오는 법인데, 이 댁에는 아무리 보아야 그런 기색도 없으니 말이외다. 보아하니 대감네 가사 비용은 우리 따위보다는 퍽 많이 들 게외다. 술도..."

흥선은 잔을 들었다. 그리고 코로 술의 냄새를 맡아보고 혀끝으로 맛을 보았다.

"우리 먹는 막걸리보다는 훨씬 비쌀 게야. 안주도 - 이건 뭐요? 해파리? 이건 또 비철의 오이? 톡톡히 걸렸을 걸! 이런 건 나 같은, 조상이나 잘 둔 사람을 위해서 따로이 마련한 것은 아니겠지요? 대감 댁에서 보통 쓰시는 것이겠지요? 그 많은 가사 비용을 빚 안 지고야 어떻게 당하겠소? 빚은 나보다 몇천 곱 몇만 곱 되리다. 한데 빚쟁이가 안 오니 웬일이오? 못 오게 하는 묘책이라도 있소?"

주정꾼의 헛소리로 넘기기에는 너무도 쏘는 말이었다. 진정한 질문으로 듣기에는 너무도 기경한 말이었다. 영초는 이 잘못하다가는 재미없는 시비가 일어날 듯한 장면을 뚫고 나아가기 위하여 연하여 미소를 그의 얼굴에 나타내었다.


 

8. 변변치 않는 난초도 그리고

"대감, 그런 농담은 차차 하시고 잔이나 드세요. 오래간만에 대감과 대작을 하게 되니 퍽 반갑소이다. 자, 어서 잔을 드세요."

영초의 눈짓에 기생은 흥선을 위하여 다시 권주가를 뽑아내었다.

그러나 흥선은 완강히 잔을 들지 않았다. 공복에 독한 술을 먹었기 때문에 검붉게 된 얼굴에다가 기괴한 미소를 띠고, 정면으로 영초의 낮을 바라보면서 완강히 '묘책 전수'를 요구하였다.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은 호구지책으로 변변치 않은 난초 장도 그려서 팔고, 투전판에서 뽑이도 하거니와, 대감은 그런 재간도 있다는 소문도 없으니 돈 생길 데가 없어. 그러면서 이 많은 비용을 어디서 구해내시오?"

"하하하, 대감도 농담도 너무 심하시구료."

"농담? 내가 농담이오?"

흥선은 정색을 하였다. 그리고 휙 기생을 돌아보았다.

"야, 너의 집에는 빚쟁이가 안 오느냐?"

기생도 미소하였다.

"왜 안 올 리가 있습니까?"

"와? 오면은 그럼 너는 어떻게 하느냐?"

"그러기에 이런 대감 댁에 와서 숨어 버리지 않습니까?"

"여기 숨는다? 그걸 보오. 이 댁에는 빚쟁이가 못 오게 하는 무슨 묘책이 있기에 여기 피신까지 하는 게 아니오? 자, 대감 응? 그 - 그 - 어 취한다."

휙 지독한 취기가 한번 그의 머리를 덮고 지나갔다. 그 취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몸을 그냥 팔굽으로 상에 기대고 흥선은 푹 머리를 수그렸다. 과세 비용의 걱정이 술 때문에 무섭게 확대되어 갑자기 그의 가슴을 눌렀다.

"에, 가봐야겠군!"

잠시 머리를 수그리고 있던 흥선은 갑자기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러나 공복에 독한 술이 들어갔기 때문에 온몸이 마비된 흥선은, 자기의 몸을 마음대로 일으킬 수가 없었다. 반만치 일어나다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허허, 몹시 취했군!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담? 대감! 영초! 영초! 나 여기서 한잠 자겠소."

흥선은 몸을 번듯이 거기 눕혔다.

"한송정 솔을 베어 조그맣게 배를 무어 - 어 취한다! 우리 늙은 마누라 쌀이나 좀 바꾸어 왔나..."

흥선은 거기서 혼혼히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러나 거기서 혼혼히 잠은 들었으니 흥선의 잠은 오래 계속되지 못하였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커다란 수심 때문에, 잠이 든 지 얼마 되지 못하여 번쩍 눈을 떴다.

"으 - ㅁ!"

한 소리 기지개와 함께 흥선은 사면을 살펴보았다. 처음 한순간은 부드러운 처네와 뜨뜻한 넓은 방이 낯설었지만, 그것이 영초의 집 사랑 정침(正寢)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흥선은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매 아까의 기생이 시중을 들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흥선에게 수정과 한 대접을 바쳤다.

"응, 한잠 잘 잤군! 어서 집으로 가야겠군."

흥선은 양치를 한 뒤에 자기의 의관이 어디 있는지를 살필 때에, 침방 문이 열리며 거기서 주인 영초가 나타났다.

"벌써 다 주무셨소?"

"아이구, 잘 얻어먹고 낮잠까지 자고... 이젠 가야겠소."

"왜 좀더 천천히 가시지요. 해정이나..."

말을 계속하는 것을 흥선은 가로막았다.

"해정이 다 뭐요? 어서 가야지, 집에서는 눈이 빠지게 기다릴 터인데..."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영초는 거기에는 대답지 않고 가까이 내려왔다. 그리고 흥선이 자리를 비키려는 것을 손짓으로 막고 자기는 발치에 물러앉았다.

"가신다 해도 그 옷이 모두 구겨져서 어떻게 그냥 가십니까? 저 방에..."

영초는 손을 들어서 제 침방 쪽을 가리켰다.

"잠깐 가 보세요. 변변치는 못하나마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했습니다."


 

9. 변변치 않은 옷

흥선은 눈을 들어서 영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주 자기를 돌아다보는 눈 - 그것은 결코 당대의 권문 대제학 김병학의 눈이 아니요, 일개 사람 - 서로 접근할 수가 있는 '사람' 김 병학의 눈이었다. 흥선은 잠시 영초의 눈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일어섰다. 영초의 눈에 조금이라도 불쾌한 자위가 있었으면 여니와 흥선은(까닭은 모르지만) 호의로 찬 영초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침방에 들어가 보매 시동(侍童)이 의복 일습을 보료 아래 녹이고 있었다. 갓에서 버선, 대님, 허리띠며 주머니에 이르기까지, 의복 일습이 자기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었다.

흥선은 거기서 시동의 손을 빌어서 옷을 갈아입었다. 벗어 놓고 보니 자기의 낡은 옷은 구기기는커녕 때도 꽤 많이 끼어 있었다. 그것을 벗어 던지고 흐늘어지는 비단옷을 입고 나니, 가난에 젖은 이 공자의 몸은 마치 하늘로 날아올라라도 갈 듯하였다.

"우화 등선 - 그러나 몸이 헤픈 것이 옷을 입은 것 같지를 않소."

이것이 이 좋은 새 옷을 준 데 대한 흥선의 인사였다.

영초는 미소하면서 대답하였다.

"변변치 않은 옷이외다."

"과연 변변치 않소이다. 대감께는 많이 있는 옷이니 변변치 않을 것이고, 내게는 입어도 입은 것 같지 않으니 변변치 않고 - 나 같은 사람에게는 주어야 그럴듯한 인사도 못 받는 법이외다. 하하하!"

이 자기에게 극진한 호의를 보여 주는 영초에게 대하여 얼마의 조력을 청하고 싶은 생각은 뒤를 이어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호의 위에 더 무엇을 청구할 만한 용기까지는 생겨나지를 않았다.

영조는 자기의 초헌( 軒)까지 등대하여 두었다가 돌아가는 흥선으로 하여금 타게 하였다.

비단옷에 감긴 몸을 초헌에 싣고 구종 별배를 앞뒤에 단 이 공자 - 세상일 것 같으면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일일지나, 흥선은 마치 위압된 듯이 몸을 초헌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초헌에 몸을 싣고 구중 별배를 뒤에 단 이 호화로운 공자가 마음 가운데는 당장의 끼니와 쌀 걱정까지 하는 사람이라고는 알 사람이 없었다. 호화로운 초헌에 대하여 길가는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였다.

이리하여 흥선은 표면으로는 위세 좋게 자기의 댁으로 돌아왔다.

집에까지 돌아온 흥선은 대문 밖에서 영초의 하인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마치 피하듯이 몰래 사랑으로 들어갔다. 비록 가난은 하나마 자존심이 지극히 놓은 그, 아침에 부인에게 부탁을 받고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변명을 하기가 귀찮았다.

팽 경장에게 눈물나는 수모를 받았다는 말은 체면상 못할 일이었다. 김병학에게 술을 얻어 먹고 옷을 얻어 입고 왔노라는 말도 역시 못할 말이었다. 이 모든 못할 말들을 피하기 위하여 흥선은 몰래 사랑으로 기어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사랑에는 뜻밖의 광경이 그의 눈을 둥그렇게 되게 하였다.

당연하게 추울 사랑이었다. 해어진 보료며 해어진 장침(長枕)이며 해어진 안석이 놓여 있을 사랑이었다. 아침에 자기가 나갈 때도 그러하였다. 다시 돌아온 지금에도 당연히 그러하여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방안에서 첫 번 주인을 맞은 것은 뜨뜻한 공기였다. 서늘하고 음침하여야 할 방에 뜨뜻한 공기가 가득 차 있었고, 아랫목에는 비단으로 꾸민 새로운 보료며 안석이며 장침 사방침 들이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을 문창도 어느 틈에 모두 깨끗이 발리었다. 이(영초에게 얻어 입은 것이나마) 비단옷에 감긴 공자에게는 그다지 손색이 없는 방으로 어느덧 변하여 있었다.

"?"

아직 술이 채 깨지 않은 흥선은 눈을 이리 찡그리고 저리 찡그리며 살펴보았다. 틀림없는 자기의 집이었다. 내다보면 쓰러져 가는 아래채며 거미줄 천지의 추녀며 - 자기의 집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쓰러져 가는 집의 방안만은 아침과는 형태를 완전히 달리한 것이었다.

흥선은 잠시 거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서 있을 동안 이 온갖 고난을 다 보고 겪은 흥선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흥선은 잠시 거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서 있을 동안 이 온갖 고난을 다 보고 겪은 흥선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흥선은 이것을 부인의 한 일로 알았다. 자기를 내보내기는 하였지만, 아무리 하여도 변통해 올 듯싶지 않아서 부인이 직접 다른 방면으로 활동을 하여 과세의 준비를 넉넉히 한 것이어니, 이렇게 생각하였다. 궁핍하여 부인에게까지 이런 수고를 끼치는 것이 더욱 마음에 불안하였다.

오늘 두 개의 인정을 보았다. 상갓집 개와 같이 가는 곳마다 구박만 받고,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수모만 받아서, 울분과 반발성만 마음속으로 잔뜩 길렀던 흥선은 오늘 본 두 개의 인정 때문에 눈물겨웠다.


 

10. 대왕대비께 보내는 세찬만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흥선은 갓과 웃옷을 벗어 걸고 안방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모든 자기의 자존심을, 벗어버리고, 부인에게 미안하노라는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겸하여 김병학의 호의를 말하고 팽 경장의 횡포를 말하여, 같이 분해하고 같이 감사하기 위해서였다.

안뜰에 들어서 보니 앙침까지도 쓸쓸하기 짝이 없던 안뜰도 활기를 띠었다. 부엌이며 뜰이며 쪽마루며 할 것 없이, 하인들은 과세의 음식을 차리느라고 욱쩍하고 있었다. 세찬 한 군데 들어올 곳이 없는 이 가난한 공자의 집에도 하인들이 뜰에 우글거리고 다니니, 겨우 대목 같기도 하였고 사람 사는 집 같기도 하였다.

이 가운데서 흥선은 자기의 몸에 감긴 비단옷을 서투른 듯이 굽어보며 댓돌 위에 올라섰다.

"백구야 훨훨 날지를 마라."

이런 싱거운 때의 기분을 감추기 위하여 노래를 코로 부르면서 안방으로 들어오는 흥선을 부인은 일어서면서 맞았다. 이 부인을 따라서 일어서서 아버지의 귀택을 맞는 소년 - 애명을 개똥이라 하는 이재황(李載晃)이었다.

"사동 김 판서가 세찬을 보내 주셔서..."

부인이 흥선에게 이 말을 할 때는 부인의 눈에는 눈물까지 있었다.

모든 것이 영초의 보낸 물건이었다. 명색은 세찬이라 하되, 그것은 세찬이 아니요 당분간의 흥선 댁의 생활비와 생활 필요품 전부였다. 금전, 미곡, 그밖에 생활품이 몇 짐, 영초에게서 세찬이란 명목으로 흥선에게 온 것이었다.

흥선은 눈을 감고 생각하였다. 아까 팽 경장에게 욕을 보고 추운 겨울의 거리를 지향없이 돌아다닐 때에, 길에서 영초의 행차를 만나서 억지로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가던 영초 - 그 뒤 정성을 다하여 자기를 환대하던 영초 - 자기가 돌아올 때에 격식에 벗어나서 중문까지 자기를 보내 주던 영초 - 세력 없고 돈 없는 자기인지라, 거리의 마바리꾼 하나도 자기에게 호의를 보여 주는 사람이 없는 이 기박한 세상에서, 당대의 권문인 영초 김병학이 이렇듯 호의를 보여 준 것에 대하여 흥선은 감사하기가 짝이 없었다.

돌아보건대 현 상감의 직접 인척 되는 김씨의 일족은 물론이요, 심 모, 남 모, 이 모, 홍 모를 막론하고 동석하기조차 창피하다고 피하는 자기에게, 영초는 무슨 호의로 이런 것을 보내었는가? 받을 가망이 없는 빚은 절대로 주지 않는 이 기박한 세상에서, 영초는 무슨 까닭으로 자기에게 이렇듯 호의를 쓰나?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그 눈을 뜨면서 흥선은 이렇게 말하였다.

"응, 영초를 정승을 시켜 주지."

부인이 미소하면서 흥선을 쳐다보았다.

"정승은커녕 대감께 녹사(錄事) 하나를 시킬 권한이 있습니까?"

"시켜 주지, 시켜 주어, 하다 못해 꿈에라도 시켜 주지."

"그렇지요. 꿈에나 시키지 생시에야 어떻게 시키겠습니까?"

흥선은 잠시 떴던 눈을 다시 감았다. 때때로 생각하는 망상이 또 다시 그를 엄습하였다. 그 망상 가운데 나타나는 자기는 오늘과 같은 폐의파립의 가련한 공자가 아니요, 이 삼백여 주의 큰 나라를 호령할 대원군인 자기였다. 지금 영초가 보내 준 새 옷을 갈아입고 아랫목에 기쁜 듯이 앉아 있는 재황은, 그때는 아들이라는 명칭으로는 부르지도 못할 이 나라의 지존이었다. 그때는, 그때야말로 -

"부인!"

흥선은 눈을 감은 채로 부인을 찾았다.

"대왕대비마마(먼젓번 임금 헌종의 어머님) 조씨(趙氏)께 진상할 무슨 세찬이라도..."

"아, 참 깜빡 잊었습니다. 무슨 - 어떤 것을 하리까?"

"무엇이고 대비마마께서도 우리가 곤핍한 줄은 다 잘 아시니까 XX을 팔아서라도 대비께 세찬만은 잊어서는 안됩니다."

대왕대비 - (이 종실의 가장 웃어른) 비록 지금 낙척하여 조석의 끼니까지 부자유를 느끼는 형편이지만, 종실의 한사람이요 영특한 아들을 가지고 있는 흥선은, 거기 대하여 어떤 야망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사가 없으시고 몸이 약하신 현 상감 - 상감 불행히 승하하신 뒤에는 신왕을 지정할 권리는 종실의 어른 되는 대왕대비가 가지게 될 것이다.

야심과 패기를 마음속에 가득히 가지고 있는 흥선은, 아무 보잘 것이 없는 지금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뚫고 나갈 계획만은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그런 필요상 대왕대비께만은 자기의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서 늘 환심을 사 두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흥선은 고요히 눈을 다시 떴다.

"영초는 영의정의 재목은 못 돼. 우의정이나 주지."

그리고 이 말에 미소로써 자기를 바라보는 부인을 흥선도 또한 미소로써 마주보았다.


2. 당쟁과 왕족들

1. 당쟁의 기원

옛날 명종 때의 일이다.

그때 김효원(金孝元)이라는 사람이 이조 전랑(吏曺銓郞)에 뽑히었다. 이조 전랑이라는 것은 조정의 백관을 전형하여 쓰고 안 쓰는 것을 고선하는 권리를 잡은 지위였다.

그런데 명종비(妃)의 오빠 되는 심의겸(沈義謙)이라는 사람이 거기 대하여 반대를 주장하였다. 그 이유로는 심의겸이, 이전 어떤 날 당시의 재상 윤원형(尹元衡)의 집에 가보니까, 김효원이 그 집 문객으로 있었다. 김효원은 깨끗한 선비의 신분을 지키지 않고, 청년 선비로서 재상가의 문객 노릇을 하는 것은 비루한 일이라, 이런 사람을 전형관을 시키면 벼슬이 공평하게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들어 반대를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김효원은 심의겸을 매우 속으로 밉게 여겼다.

이로부터 얼마 뒤에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沈忠謙)이 전랑 벼슬을 하게 되었다. 그러매 이것을 본 효원이 가만히 있을 까닭이 없었다.

충겸은 사림(士林)에 아무 명망도 없는 사람 - 단지 궁중의 척권을 자세삼아 이런 벼슬에 뽑힘은 가당치 않다고 효원이 또한 들고 일어섰다.

이리하여 심씨는 김씨를 가리켜 이전 원한을 이런 곳에 풀려는 소인이라 일컫고 김씨측은 심씨를 가리켜 뒷힘을 입는 비루한 사람이라 하여 서로 시비가 분분하였다.

이 시비가 차차 벌어져서, 단지 심씨 김씨의 싸움이 아니라, 심씨 편을 돕는 패와 김씨 편을 돕는 패가 생겨서 차차 두 패가 서로 맞서서 시비를 하게까지 되었다. 즉 벼슬아치 집안과 사림의 대립이었다.

선조(宣祖) 때에 이르러서 이 시비는 더욱 커졌다. 당시에 이름 있는 사람들이 이 파 저 파로 붙어서 서로 시비하기 시작하였다. 이 발(李潑), 유성룡(柳成龍) 등이 김씨파가 되고, 윤두수(尹斗壽), 박 순(朴淳), 정 철(鄭澈) 등이 심씨의 파가 되었다.

김씨는 동촌(東村)에 살았으므로 김씨파는 동인(東人)이라는 이름을 들었고, 심씨는 서촌(西村)에 살았으므로 심씨파는 서인(西人)이라 불렀다. 이때에 서로 맞서서 군자라 소인이라 하는 시비도 생겨나니 동인과 서인이 차차 벌어지고 또 벌어져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잡아먹은 큰 불집이 되는 당쟁을 낳게 된 것이다.

동인과 서인은 서로 갈라져서 국사에는 생각을 두지 않고, 심지어 사소한 일까지라도 모두 '당파'라 하는 안경으로 내다보면서, 반대파에서 하는 일이라면 좋고 그르고 잘하고 못하고를 막론하고 반대하고, 그 시비를 생각지 않고, 반대파에서 하는 일의 반대되는 일을 자기네의 정책으로 쓰고 하였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나라의 정치라 하는 것은 모두 하나도 행하여지는 것이 없고, 오로지 머리를 모으고는 반대파를 거꾸러뜨릴 의논만 거듭하고 하였다.

동인이 세력을 잡을 때는 서인 중에 아무리 인재가 있다 하더라도 녹사 하나를 얻어 하지를 못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인의 세상이 되면 어제까지의 재상 명현이던 동인들은 모두 원배를 하거나 혹형을 당하고, 조그만 당하관까지라도 모두 서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고 하였다.

왕의 전권 시대라 왕의 총애를 사는 파이면 득세하였다. 왕의 총애를 잃은 파이면 실세하였다. 그런지라 그들은 오로지 왕의 총애를 얻으려고 별별 천한 음모까지도 다하였다. 그리고 그래도 왕의 총애를 받기가 어렵게 되면, 그들은 다른 묘책(즉, 그 왕을 폐하고 자기네를 총애하는 새 왕을 만들어 세우려는)을 꾸며내기까지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당쟁의 폐는 나날이 다달이 더 심하고 심각하여 갔다.

당시의 명유(名儒) 이 이(李珥)가 이 당쟁을 근심하여 어떻게 하여서든 두 파를 조정을 시켜 보려 하였다. 그리고 누누이 상감께 그 일을 계달하였다.

이 이 이의 노력이 성공을 하여, 나라에서는 두 파의 사람을 조정시키기 위하여 두 파의 근원인 심의겸과 김효원을, 심은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김은 경흥 부사(慶興府使)로 보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조정책이 오히려 두 파의 대립을 더욱 크게 한 것이다.

개성은 이 나라의 중요한 고장이요, 경흥은 함경도 한편 구석에 달린 외딴 색북이라, 그러니 개성 유수라는 것은 영직이려니와, 경흥 부사라는 것은 개성 유수에 비기건대 창피한 벼슬이다. 이 조처는 두 파를 조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인을 높여 주고 동인을 낮추어 주는 것이라 동인측에서 이러한 반대성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조처의 장본이 되는 이 이를 공격하였다.

이 공격이 너무 심하였으므로 조정에서는 동인측의 송응개(宋應漑), 박근원(朴謹元), 허 봉(許 )의 세 사람을 정배를 보냈다. 이것이 조위 계미 삼찬(癸未三竄) 사건이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이 이는 어느덧 중립자의 지위에서 서인의 거두로 돌아서게 되었다.

 

 


 

 

2. 당쟁의 새끼치기

그러는 동안에 동인 가운데서도 또한 그 안에서 파가 갈리어서 남인과 북인의 구별이 생겼으니, 그것은 이렇게 생긴 것이다. 즉, 이 이의 조정으로 말미암아 정부에는 동인과 서인이 아울러 서게 되었는데, 동인 가운데서 정여립(鄭汝立)이라는 사람을 쓰는 데 대하여, 동인 가운데 이 발과 우성전(禹成傳)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씨의 당인 정인홍(鄭仁弘)이 상감께 우성전을 공격하는 상소를 하였다.

이 때문에 우씨를 옹호하는 유성룡(柳成龍), 이덕형(李德馨) 등과 이씨를 옹호하는 파와의 사이가 또한 벌어졌다. 우씨는 남산동에 살았으므로 우씨의 파는 남인이라는 지명을 받았고, 이씨는 북촌에 거하였으므로 이씨 파는 북인이라는 지명을 받았다.

이리하여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졌지만, 본시는 같은 당이므로 서로 모함하고 죽이고 하는 일은 없이 그렁저렁 지냈다.

유명한 기축 옥사(己丑獄事)도 동인 서인의 당쟁이었다. 서인 정 철(鄭澈)이 동인 정여립의 대역죄를 다스렸는데, 그때 동인으로 지목받는 명사들로 죄없이 벌받은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동서의 당쟁은 이 뒤에는 도저히 조정할 수가 없도록 서로 원한은 크게 되었다.

그 뒤 광해군(光海君)의 조에 이르러서 광해군을 가운데 두고 북인 가운데 대북(大北) 소북(小北)이 갈리고, 대북에는 또한 골북(骨北) 육북(肉北)의 파가 생겨서, 대북 전성 시대를 이루었다가 인조의 반정(仁祖反正)으로 대북파는 역모로 몰려서 전멸하여 버리고, 소북만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원체 소북은 그 사람 수효도 적고 세력도 없었으므로, 정권 쟁탈의 제일선에는 나서 보지를 못하였다.

동인의 한 갈래인 남인과 서인과의 정쟁만 계속되었다.

인조 등극 후에 정권을 잡은 것은 서인이었다. 그러나 남인 가운데도 이원익(李元翼) 같은 명사를 기용하여 한때 남인과 서인의 다툼이 주춤하게 되었다.

정치의 실권은 서인이 잡았다. 남인들은 자연히 명목만 있고 실권은 없는 벼슬로 몰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표면적이나마 서인과 남인 사이의 정권 쟁탈전은 한때 식어진 듯이 보였다.

효종(孝宗)이 등극하였다.

효종은 세자 시절에 심양(瀋陽 = 奉天)에 잡혀가서 욕을 본 일이 있는지라, 그 철천지한을 잊을 수가 없어서, 나라를 독려하여 예의로 국력 배양에 힘썼다. 그 위에 당시의 명신이요 유명한 학자인 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은 서인의 거두라, 서인과 남인의 싸움은 일어날 겨를도 없었고 감히 일으키지도 못하였다.

청국을 정벌한다는 커다란 희망을 품은 채 실행하지 못하고 효종이 승하하고 현종(顯宗)이 등극하였다.

그때에 효종의 모후(母后)의 복제 문제로 남인 허 목(許穆), 윤 선도(尹善道) 등과 서인 송 시열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겼다. 여기서 한때 죽었던 남인 서인의 다툼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소위 기해예송(己亥禮訟)으로서, 효종이라 하는 튼튼한 돌쩌귀가 없어지기 때문에 다시금 싸움은 시작된 것이다.

다음 숙종 때에는 유명한 '폐비 사건'이 생겼다.

숙종에게는 장씨라 하는 아리따운 후궁이 있었다. 숙종은 그 후궁에 혹하여서 왕비 민씨를 돌보지 않았다.

그런데 장씨라 하는 후궁은 본시 음탕하고 간교한 여인으로서, 왕의 총애뿐은 부족히 생각하여 종친 동평군(東平君)과 가까이하였다. 그리고 왕의 총애를 자세삼아 방자한 행동이 많았다.

숙종, 왕비 민씨, 후궁 장씨 - 이 델리케이트한 관계를 두고 또 여기서 맹렬한 당쟁이 일어났다.

송시열, 김수항(金수恒) 등 당시의 재상들은 모두 서인이었다. 이 재상들은 모두 민왕비의 두호자로서, 사리를 들고 의를 들고 예를 들어서 왕께 후궁 장씨를 멀리하기를 간하였다. 그러나 장씨에게 깊이 마음을 잡힌 왕은 이 재상들의 간을 즐겁게 여길 수가 없었다.


 

3. 사도세자의 비극도

이 기회를 타서 이 궁중의 애욕 문제를 당쟁에 쓰려고 일어선 것이 남인 이현기(李玄紀), 남치훈(南致薰) 등이었다. 그들은 왕께 품하여 자기네들의 정적(政敵)인 서인들을 모두 극형에 처하고 혹은 정배 보내게 하였다. 그리고 왕비 민씨는 떨구어서 서인(庶人)으로 하게 하여 안국동 자기의 집으로 내어쫓았다.

후궁이던 장씨는 여기서 당당한 왕비로 승격을 하였다. 동시에 그 세력이 커짐과 함께 남인들의 세력도 커져서 세상은 남인의 세상으로 변하였다.

정부의 중요한 자리, 각 곳 수령 방백은 모두 남인 혹은 남인의 집안 사람이 점령하였다. 한때 찬란한 남인 전성 시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본래 어둡지 않은 숙종은 오래 혼미한 꿈에만 잠겨 있지 않았다. 장씨의 허물을 겨우 알았다. 동평군과의 사이도 또한 눈치채었다. 그러는 동안에 세력 잃은 서인들의 책동도 여기 가하게 되어, 어젯날의 재상이요 권력가들은 오늘 다시 야에 내려가게 되고, 다시금 서인의 천지를 이루게 되었다.

이리하여 여기서 당쟁은 고조에 달해서, 이때에 맺힌 원한은 서로 풀 길이 없게 되었다.

이 숙종 때에 서인은 또한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게 되었다. 변변찮은 문제로써 또한 서인도 두 파로 나뉘어 버린 것이었다.

이리하여 여기 네 가지의 당파가 생겼다. 본시 서인으로서 지금은 두 파가 된 노론 소론과, 본시 동인으로서 지금은 두 파가 된 남인 북인(북인은 또 여러 파로 갈렸지만) - 이것이 소위 사색(四色)으로서, 조선 정권의 쟁탈전은 이 뒤부터 늘 이 네 파에서 하게 되었다.

내려와서 영조 때에는 노론과 소론의 다툼이 격렬하게 되매, 영조는 현철한 군주라 탕평 정책으로 두 파를 융화시키려 했지만 잘 가리지를 못하였고, 오늘은 노론, 내일은 소론, 이렇게 정권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한때는 노론들 때문에 소론은 씨도 없이 전멸될 뻔까지 하였다.

그때에 당쟁열이 얼마나 심하였는지는 아래의 한 예를 보아도 알 것이다.

이인좌(李麟佐)가 청주 땅에서 반역의 기를 들고 일어났을 때, 조정에서는 이인좌가 소론의 한 사람이라는 불미로,

"소론의 난리는 소론이 진정시켜라."

고 대장, 중군에서 영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론 가운데서 내보냈다.

이리하여 그때는 노론 혹은 소론 가운데 한 사람의 개인적 행동까지라도 모두 당쟁에 이용하고 세력 다툼에 이용하였다.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비참한 최후도 노론 소론의 당쟁에서 생겨난 것이다.

영조는 정궁께 아드님을 못 보고 후궁 이씨에게서 경의군(敬義君)이 탄생하였는데, 영특하고 총명하므로 왕은 이를 세자로 봉하였다.

그러나 세자는 불행히 열 살에 하세하였다.

여기서 노론들은 종친 가운데서 동궁을 한 분 간택합시사는 의견을 내었다. 거기 반하여 소론측에서는 상감이 아직 춘추가 많지 않으시니 기다려 보는 것이 옳은 일이라 반대하였다.

왕은 소론의 말을 옳게 여기고 기다리는 동안, 영빈 이씨(暎嬪李氏)의 몸에서 왕자가 탄생하였다.

이이가 즉 사도세자(思悼世子)이다. 이이를 사이에 두고 맹렬한 당쟁과 음모 등이 계속되어, 마지막에는 세자가 부왕의 오해를 사서 뒤주 속에서 굶어서 하세하게 된 비참한 사실까지 생겨난 것이다.

사도세자의 아드님이요 영조의 손주 되는 정조(正祖)는 현철하고 명석한 군주였다.

정조는 이 당쟁의 폐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없이하여 버리기는 매우 힘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사색 당인들로 하여금 당쟁에 마음을 둘 겨를이 없게 하려고, 그 수단으로서 여러 가지 사업을 일으켰다.

편찬, 효자 열녀의 표창, 과거, 치수치산, 온갖 일을 안출하여 내어서 당쟁에 마음을 둘 틈이 없게 하였다. 이리하여 이씨조의 중흥 사업은 성취될 듯이 보였다.


4. 설 곳 없는 종친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순조(純祖)의 대부터 다시금 당쟁은 시작되었다.

순조의 재위 삼십 사 년간, 또한 그 뒤를 이은 헌종(憲宗) 재위 십 오 년간, 한 대 더 내려와서 철종(哲宗)의 대에 이르기까지 순조의 등극한 것이 열 한 살 되던 해요, 헌종은 홑 여덟 살 되던 해며, 철종은 강화도의 한 초동(樵童)으로서 열 아홉 살에 등극을 하여서 그때부터야 비로소 글을 배웠으니, 이 삼 대의 임금의 군권이 펼 까닭이 없었다.

이 삼 대의 임금의 뒤에서 수렴청정(垂簾廳政)한 이가 대대의 대비였다. 이리하여 당쟁은 통어할 이가 없어 그 극도에 달하고, 정사는 극도로 어지럽게만 된 것이다. 오늘의 공신이 내일은 역신으로 몰리고, 어제의 역신이 오늘의 공신으로 되고 - 이렇듯 그 변천이 짝이 없었다. 그리고 또 변천이 무쌍한지라 안정되는 일이 도무지 없었다.


이런 당쟁의 틈에 끼여서 간련한 생활을 계속한 사람은 왕족들이었다. 왕자(王子), 왕형제(王兄弟), 왕손(王孫), 왕숙질(王淑侄)은 무론하고, 왕실의 피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참혹한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당쟁에 있어서 자기네의 세력을 펴기에 제일 간단하고 경편한 수단은, 자기네들 가운데서 딸이나 누이를 궁중에 들여보내서 후궁이나 혹은 왕비를 삼는 것이었다. 척신이 되어 가지고야 그들은 마음대로 세력을 펼 수가 있었고 마음대로 자세를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세력 잡는 제일의 수단으로서 누이나 딸을 궁중으로 들여보냈다.

그런지라, 당파의 세력의 증장(增長)을 따라서 비(妃)가 빈(嬪)이나 서인(庶人)으로 떨어지고, 빈이나 서인이 일약 비로 승격을 하고 하는 일이 무상하였다. 거기 따라서는 또한 어젯날의 세자이던 분이 오늘은 역모로 몰려서 극형을 당하고, 어제의 무명한 종친이 동궁으로 책립이 되고 하는 일이 무상하였다.

조금만 왕과 촌수가 벌어지는 종친은 누구든 경이원지(敬而遠之)하였다. 왕족의 생명이 위태롭기 짝이 없는 시대에 있어서 왕족과 친히 하다가는, 만약 어떤 정책상 그 왕족이 역모로 몰리는 날에는, 자기도 애매한 죽음을 하기가 쉬워서 왕족과의 교제는 서로 꺼렸다.

이씨 조선의 역사를 뒤져보자면, 명료하지 못한 죄명으로 혹은 유배, 혹은 극형을 당한 왕족이 수가 없다. 현왕의 총신으로서 후대 왕께까지 총애를 받으려면 반드시 자기네와 마음이 맞는 이를 세자로 정하도록 책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자기네와 마음이 맞지 않는 종친은 이 세상에서 존재를 없이하여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 필요상 가장 손쉽고 중한 벌을 가할 죄명은 역모라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역모라는 죄명에 몰려서 비명에 타계(他界)한 왕족의 수효는 이루 다 헤일 수가 없다.

노론이 세력을 잡은 때는 소론측에서 추대하려던 세자는 반드시 해를 보았다. 소론측에서 세력을 잡은 때는 남인을 왼편으로 한 왕자는 반드시 해를 보았다.

이리하여 노론·소론, 남인·북인이 바꾸어 가면서 정권을 잡는 동안 종친은 무수히 해를 보았다.

이 때문에 좀 슬기로운 종친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왕실을 벗어났다. 정계(政界)를 멀리하였다. 그리고 삼촌이 사촌이 되고 사촌이 오촌 육촌으로, 왕실과 사이가 벌어져 가는 동안 이 가련한 종친들은 밥을 위하여 혹은 낙향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락의 지위에서 어떻게 어떻게 능지기라는 소역(小役)이나 얻어서 겨우 그들의 굶주린 입을 쳐나가는 것이었다.

왕족이 벼슬을 하는 것은 금하는 바였다. 그 금령 때문에 벼슬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왕족으로서 상인(商人)이나 공인(工人)이 될 수도 없는 영락된 공자들은, 자기네의 사촌 혹은 오촌 육촌이 팔도 삼백 주를 호령하는 지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상갓집 개 모양으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헤헤 하며 장안 대도를 헤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낙향을 하여 몸소 낫을 잡아 새를 베며 보섭을 끌어 밭을 가는 것이었다.


5. 보위를 놓친 흥선군

왕족 끼리끼리의 교제도 없었다. 만약 섣불리 교제를 하다가는 어떤 죄명 아래 어떤 형벌이 자기네의 위에 가해질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궁을 떠난 종친이야말로 고래 싸움에 치인 새우의 격으로서, 당쟁에 희생되어 몸은 당당한 종실 공자면서도 굶주림에 헤매는 가련한 사람들이었다.


흥선군 이하응(李昰應)은 이씨조 21대 영조의 현손(玄孫)이요, 사도세자의 증손이었다.

영조의 세손이요 사도세자의 아드님인 정조가 등극을 하고, 그 뒤 순조를 지나서 순조의 세손 헌종이 등극할 동안 - 흥선군의 집안으로 보자면 흥선의 할아버지 은신군 충헌공(恩信君忠獻公)의 대에는 지존과는 동기이던 것이, 흥선의 아버지 남연군 충정공(南延君忠正公)으로부터 흥선에게 이를 동안 - 궁중에서는 사도세자로부터 사 대째 내려오고 흥선가에서는 사도세자로부터 삼 대째 내려올 동안 - 동기가 삼촌이 되고 삼촌이 사촌 오촌으로 벌어져서 헌종과 흥선군과는 칠촌숙질로 벌어질 동안 - 궁을 떠난 이 집은 영락되고 또 영락되었다.

순조의 뒤를 이어서 여덟 살에 등극하였던 세손 헌종이 기유(己酉) 유월 초엿샛날 보수 스물 셋으로 후사가 없이 승하하였다. 아직 청년이기 때문에 따로이 세자도 책립치 않고, 헌종의 아버님인 익종도 소년 하세하기 때문에 세제(世弟)도 없었으므로, 종친 가운데서 지존을 모셔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만약 흥선으로서 나이가 좀더 어려서 그때의 척신인 김씨들에게 좌우될 만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몸가짐이라도 좀 단정하였더면 헌종의 뒤를 이어서 제 이십 오 대의 보위에 올라갈 자격이 넉넉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이 영락된 공자를 돌보지 아니하였다.

헌종이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에서 갑자기 승하하고, 그 세자며 세제도 없었기 때문에 종친회의가 열리고, 이 사직의 승계자를 지정할 권리를 홀로 잡은 대황대비(순조비 김씨)께 중신들이 후사 지정을 간원할 적에, 대황대비는 가까이 이 서울에 있는 흥선군을 지적하지 않고, 강화(江華)에 내려가서 농사에 종사하고 있는 철종을 지적한 것이었다. 같은 사도세자를 증조부로 하고 삼 대째 내려온 흥선의 육촌동생이었다.

"영묘(英廟)의 혈맥은 승하하신 금상과 강화의 원범(元範)뿐 - 그를 모셔다가 이 사직을 잇게 하오."

이것이 대왕대비의 하교였다.

이리하여 행운의 신은 슬쩍 흥선의 집안을 그저 넘어가 버렸다.

궁중 부중은 그때 김씨의 천지였다.

순조 왕비도 김씨였다. 순조의 아드님으로, 보위에 오르기 전에 하세한 익종의 비는 조씨(趙氏)이나, 익종의 아드님인 헌종의 비도 처음은 승지 김조은(金祖垠)의 따님이었다. 강화도에서 모셔온 철종도 김문근(金汶根)의 따님을 비로 삼았다.

이리하여 삼 대째 내려온 김씨의 세력은, 궁중 부중을 무론하고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이런지라, 벌써 성년자요 대처자(帶妻者)인 흥선은 절대로 보위 후계자의 가운데 손꼽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전 상감은 자기의 칠촌 조카이며, 현 상감은 자기의 육촌동생이로되, 이 영락된 공자 흥선은 척신 김씨의 세력에 압도되어, 마치 상갓집 개와 같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투전판이며 술집을 찾아서,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깨를 겨루고 배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때로 술값이라도 정 몰리면 붓을 잡아 난초를 그려서, 그것을 팔아 달라고 각 대관의 집을 지근지근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마음이 끝없이 교만한 대관 댁 청지기며 하인들에게 갖은 비웃음을 다 받지만, 이 공자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폐의파립으로 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귀찮게 구는 것이었다.


3. 조대비를 만나라

1. 네 손이 가장 크다

신유년(辛酉年) 정월 초하룻날 아침해가 불그스름히 동녘 하늘에 솟아올랐다.

이날 흥선은 일찍이 깨었다.

초라한 무명옷이나마 깨끗이 갈아입고 소세를 한 뒤에, 집안 아랫사람들에게 세배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맏아들 재면이 들어와서 세배를 하고 나갔다.

그 뒤에 그의 사랑하는 둘째아들 재황이 들어왔다. 열살 난 소년 - 얼굴은 고치와 같이 타원형으로 이쁘게 생기고 총명한 눈이 반짝이는 소년이었다.

명절이라고 역시 새 옷을 깨끗이 입은 소년은 들어와서 아버지에게 절을 하였다. 흥선은 소년을 굽어보았다. 흥선의 얼굴에는 명랑한 미소가 떠올랐다.

"응, 개똥이(재황의 애명)냐? 금년에는- 금년에는…"

흥선은 말을 주저하였다. 눈자위에 다시 미소가 흘렀다.

"금년에는…"

또 한번 뇌어 보았다. 그런 뒤에 지극히 작은 소리로,

"등극을 하셨다니 치하 드리옵니다."

한 뒤에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소년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장래 숱한 고난을 겪고 숱한 비극을 겪은 뒤에 태조적부터 전면히 물려 내려온 사직의 소멸까지 친히 눈으로 보고, 왕자로서 능히 겪기 어려운 가지가지의 일을 다 보아야 할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소년이었다. 영특한 눈, 총명스러운 눈으로 잠시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한 말은 듣지 못한 것이었다.

"재황아!"

"네?"

"좀 가까이 온!"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아버지의 앞에까지 다가앉았다.

자기의 앞에 다가앉은 아들의 손을 아버지는 잡았다. 그리고 잠시 아들의 얼굴을 굽어보다가 그 눈을 조금 더 떨어뜨려서 자기의 손에 잡혀 있는 조그만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을 굽어볼 동안 흥선은 몸을 떨었다.

이 자기의 손 속에 잡혀 있는 작다란 손 - 이 손은 능히 장래 이 나라라 하는 것을 긁어잡을 손이 될 것이냐?

돌아보건대, 지금부터 12년 전, 헌종이 갑자기 창덕궁에서 승하하였을 때, 하마터면 자기에게 굴러왔을는지도 모르는 그 행운이, 이제 장래에 이 소년의 위에 떨어질 날이 올 것인가?

이 작다란 손이 대보를 잡을 날이 언제 올 것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몽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혹은- 혹은…

"재황아!"

"네?"

"네 이 손은 큰 손이로다."

소년도 얼굴에 자랑스러운 듯한 웃음을 띄웠다.

"차손이 손보다도 큽니다."

"차손이?"

"네, 교동 사는 - 열 다섯 살이라도 제 손보다 작아요."

"그렇지! 차손이 - 장손이 - 김가 이가 할 것 없이 네 손이 가장 큰 손이라."

그리고 자기를 쳐다보는 소년을 환희와 긴장에 찬 마음으로 굽어보았다.

-큰 손이다. 팔도를 잡을 손이다. 삼백 주를 흔들 손이다. 삼천리를 덮을 손이다. 이 아비를 사닥다리 삼고 기어올라가서 아비의 상투를 잡을 손이다.

아아, 그런 날이 장차 올 때가 있을 것인가? 온갖 것의 위에 올라설 그 날이 이제 올 것인가?

흥선은 소년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소년의 등을 두어번 두드려 준 뒤에 다시 제 손을 들어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새로 빗기는 하였으나 장난 때문에 거칠고 또 거칠어진 머리였다.


2. 王者의 덕

"재황아! 오늘이 이 해의 첫날이니, 금년 신수를 위해서 내 네게 두어 마디 물어 볼 말이 있다."

"네."

아무런 말이든 대답하겠습니다 하는 뜻이었다.

"왕자(王者)의 덕은 무엇이냐?"

"서민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올시다."

"또?"

"또…"

소년은 머리를 기울였다.

당시의 각 종친이며 권문들에게 '시정의 한 무뢰한'으로 알려져 있는 흥선은, 자기의 사랑하는 둘째아들을 데리고 집에서는 늘 왕자의 걸을 길과 왕자의 덕을 가르친 것이었다. 열 너덧 살부터 벌써 거리에 나서서 세상의 쓰고 단 온갖 경력을 다 맛본 흥선은, 자기의 경험과 자기의 본 바에서 짜낸 정치관과 도덕관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자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많은 경험이 쌓은 것인지라, 가장 철저한 종류의 것이었다.

"또, 잊었느냐?"

"또, 저 - 가만 계셔요. 저, 저 네 알겠습니다. 그, 저…"

하며 머리를 기울이는 소년에게 대하여 흥선은 깨쳐 주었다.

"편중 편애를 삼갈 것이다."

"네, 저도 생각은 났는데 미처 뭐랄지 말이 나오지를 않아서…"

"음, 그리고 또 있다."

"네."

"또 뭐냐?"

"…"

"처권(妻權)에 눌리지 말 것이다."

"네?"

소년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소년이 알아듣지 못한 것이 흥선에게는 도리어 다행이었다. 가슴속에 맺히고 또 맺힌 불만 때문에 불끈 그 말이 입밖에 나오기는 하였지만, 동시에 그런 말은 지금 가르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소년이 알아듣지 못한 것을 다행히 여기는 흥선은 자기의말을 속여 버렸다.

"처세에 밝아야 한다. 그리고 또 있다."

"네."

"또 자기의 자격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가장 웃사람이고, 따라서 만인의 표본이 돼야 할 사람인 줄을 알아야한다. 또 남을 눈 아래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호령할만한 사람이나 호령할 만한 일이 있을 때에는 호령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소년은 무슨 필요로 자기가 이런 학문을 배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기야 집안이 왕실의 친척인지라, 종친 된 자는 반드시 배워 두어야만 하는 것이거니 이만큼 알아두었다.

만약 이런 장면을 당시의 권문 척신들이 보았으면 그들은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었다. 단지 한 투전꾼이요 주정꾼이요 주책없는 인물로 알아오던 흥선이, 자기의 집에서는 자기의 둘째아들을 옆에 놓고 왕자의 덕이라는 것을 강술하는 줄을 알면, 흥선은 목이 열 개라도 당하지를 못할 것이었다.

표면 세상이 침을 뱉는 창피한 짓을 예사로이 하며 권문집 생일날이며 제삿날은 반드시 잊지 않고 기신기신 찾아다니는 흥선은, 집안에 있어서는 남이 예측하지 못할 규칙 바른 가장이며 자애와 엄격을 가진 지배자였다.

무식한 아버지 아래에서 아무 배움이 없이 길러난 줄로 세상에 알려져 있는 고종이, 후일 무서운 패력으로써 이 삼천리를 지배하고 지도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끊임없는 지도와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야인으로 길러난 맏아들은 할 수 없이 내버려두고, 흥선은 이 둘째 아들의 훈도에 전력을 다하였다. 남이 모르는 애, 남이 알았다는 큰일이 날 애를 쓰고 또 썼다.


3. 이호준을 기다리며

가묘(家廟)의 다례(茶禮)가 끝난 뒤에 소년은 뜰로 나왔다. 꽤 추운 겨울날이로되 바깥에 단련된 소년에게는 그다지 영향 되지 않았다. 장난꾸러기의 소년 - 소년은 앞으로 돌아와서 새벽부터 벼르고 벼르던 연을 날렸다.

알맞추 부는 바람에 연은 소년의 손을 떠나서 둥실둥실 하늘로 올라갔다.

그 연이 꽤 높이 올라서 얼른 보면 알아보지 못하리만치 되었을 적에야 흥선은 사당에서 나왔다.

어두운 사당에서 나온 흥선은, 눈이 부신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앞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연을 올리는 아들을 본 흥선은, 소년의 손에서 연 달린 줄을 따라서 하늘 높이 너울거리는 연을 잠시 보고 있다가 사랑으로 들어갔다.

막 정침으로 들어가려다가 흥선은 청지기의 방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두어 번 발로 마루를 쿵쿵 울렸다. 그 소리에 응하여 청지기가 나왔다.

흥선은, 뒷짐을 지고 머리를 수그린 채 대령한 청지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이 잠시 서 있다가 그냥 휙 발을 도로 떼었다. 그러나 한 발짝 떼고 두 발짝 떼고 세 발짝 째 떼려다가, 그는 다시 고즈너기 돌아섰다. 그리고 청지기에게 향하여,

"좀 있다가 이 주부(李主簿)가 오시거든 내 침방으로 모셔라. 그밖에는 아무 놈…"

흥선은 허투루 나오려던 말을 얼른 도로 삼켰다.

"누가 오시든 간에 대감은 문안 가시고 안 계시다고 돌려보내라."

하였다. 그 '누구든'이란 말의 한계를 똑똑히 몰라서 청지기가 어릿거릴 때에 흥선은 거기 대하여,

"상감이 거둥하셨더라도 없다고 그러란 말이다."

하고는 휙 정침으로 향하여 사라져 버렸다.

이 주부라는 것은 이호준(李鎬俊)을 가리킴이었다.

일찍이 흥선이 사복시 제조(司僕寺提調)로 있을 때에 호준은 흥선의 아래 주부(主簿)로 있었다. 호준의 사람됨이 강하고 직하고, 어디인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호담함이 있었으므로, 흥선은 그를 매우 총애한 것이었다.

아첨과 간교함으로써 모든 것을 꾸며 가는 이 세상에 있어서, 벼슬을 달가와하지 않고 자기의 절을 굽히지 않는 호준의 성격은, 불우 낙척의 경우에 있는 흥선에게 공명되는 점이 많았다. 그러기 때문에 호준을 매우 사랑하여 자기의 서(庶)딸과 호준의 아들 윤용(允用)과 약혼을 하여 사돈의 의를 맺었던 것이었다.

어제 - 섣달 그믐날 - 흥선은 부러 호준의 집까지 찾아가서 무슨 당부를 한 일이 있었다. 오늘 세배에 겸사하여 호준은 어제 당부한 일에 대한 회답을 가지고 올 것이었다.

흥선은 정침으로 들어왔지만 마음이 내려앉지 않는 듯이 안절부절 웃목 아랫목으로 거닐고 있었다.

아랫목 보료 위에까지 내려와서 그냥 주저앉을 듯이 어름거리다가는 도로 뒷짐을 지고 웃목을 향하여 거닐고, 웃목에서 주저하다가는 다시 아랫목으로 향하여 내려오고, 이렇듯 몹시 마음이 불안한 듯이 거닐고 있었다.

그의 얼굴도 예사롭지를 못하였다. 어떤 일 때문에 한껏 긴장된 것이 분명하였다.

밖에 발소리가 나면 그는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하였다. 내다보아서 그것이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면 청지기가 돌려보내기까지 그는 역한 눈으로 그 손을 흘기고 하였다.

비록 주책없는 인물이며 가난한 주정뱅이로되 명색이 종친인 그에게는, 몇 사람이 새해의 문안을 드리러 왔다. 그러나 흥선에게 영을 들은 청지기는 오는 사람마다 그냥 돌려보내고 하였다.

이렇게 한참을 정침에서 초조히 기다리다가 흥선은 침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침방으로 들어와서 귀찮은 듯이 보료 위에 번뜻 몸을 던진 흥선은, 문갑 서랍을 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골패 쪽을 꺼내어 쫙 방바닥에 폈다. 그런 뒤에 익은 솜씨로 쪽을 저었다. 골패 쪽은 상쾌한 소리를 내며 저어졌다.

'패를 떼어 보자!'

투전꾼으로 잡기에도 상당한 수완을 가지고 있는 흥선은, 패를 떼는 데도 자기가 발명한 자기 독특의 패떼기의 법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좀체 떨어지지 않는 패였다. 한 쪽씩 한 쪽씩 죄어나가서 거의 떨어질 듯이 보이다가도 필경은 떨어지지 않고 하였다.

자기가 발명한 패떼기라, 골패 쪽을 잡을 때마다 그것을 떼어 보고 하였지만, 흥선의 아직껏의 경험으로는 그 패가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직껏의 경험으로 좀체 떨어지지 않는 패인지라, 일종의 기괴한 기대를 가지고 그 패를 떼어보고 하는 것이었다.

오른손으로 골고루 패를 저은 뒤에 그는 그 가운데서 스물 다섯 쪽을 떼어서 다섯 줄로 지어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의 쪽들을 젖혀 보았다.

젖혀놓은 쪽들을 잠시 굽어보고 있다가 흥선은 손을 펴서 그 가운데 있는 준오를 집었다.


 

4. 비로소 떨어진 패떼기

'준오! 이호준, 호준, 준오, 준호… 준오가 떨어지면 호준이 길보를 가져온다.'

왼편 머리에 있는 첫 쪽을 먼저 죄어 보았다. 골패 쪽에 익은 흥선의 손은 그 귀사기를 만져 볼 뿐으로 그것은 백륙임을 알았다. 그는 그것을 집어치우고 왼편 아래 귀의 쪽을 집었다.

그것은 아삼이었다.

이리하여 한 쪽 한 쪽 죄어 들어갈 동안 유희적 기분으로 시작한 이 놀음이 차차 그의 마음을 긴장시키기 시작하였다. 다섯 쪽 줄고 여섯 쪽 줄고 - 이렇듯 패 쪽이 줄어 들어갈 동안, 이 변변치 않은 놀음에서 받는 기괴한 긴장 때문에 패를 죄는 그의 손끝은 조금씩 떨리기까지 하였다.

처음에는 스물 다섯 쪽이던 것이 열 다섯 쪽으로, 열 세 쪽으로, 열 두 쪽, 열 한 쪽으로 줄어 들어갔다. 그러나 흥선이 이미 골라 놓은 준오의 짝인 또 한 개의 준오는 나오지 않았다.

남은 패는 다섯 쪽이 되었다. 네 쪽이 되었다. 세 쪽이 되었다. 드디어 두 쪽까지로 줄어 들어갔다.

두 쪽을 남겨 두고 흥선은 담배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천천히 담배를 붙여 물었다.

이제 두 쪽이다. 그 두 쪽 가운데에 아래쪽이 아니면 위쪽은 무론 준오일 것이다.

아래쪽이라 하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그 위쪽이 준오라 하면, 아직껏 떨어져 보지 못한 패가 여기서 비로소 떨어지는 것이었다. 담배를 붙여 문 뒤에 흥선은, 마치 쥐를 잡은 고양이 모양으로 잠시 남아 있는 두 개의 골패 쪽을 굽어보고 있었다.

이렇게 잠시 골패 쪽을 굽어보고 있다가, 흥선은 와락 달려들어서 아래쪽을 획 집어서 윗목으로 내어던졌다. 골패 쪽이 윗목으로 날아가는 동안, 골패 쪽에 익은 흥선의 눈은 그 쪽에 아로새겨 있는 붉은 점을 보았다. 그러면 그쪽도 준오는 아니었다.

흥선은 한 개 남아 있는 그 쪽을 들쳐 보지 않았다. 그리고 장침에 번듯 몸을 눕히고 말았다.

들쳐볼 필요가 없었다. 다른 쪽이 죄다 준오가 아닌 이상에는, 남은 쪽이 준오일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흥선은 몸소 그 패떼기를 발명한 이래, 떼어보기 몇십 몇백 번 - 아직껏 한 번도 떨어져 본 일이 없던 것이 오늘 비로소 떨어진 것이었다. 길보인지 흉보인지 이제 이를 회보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에 -

이호준이 흥선 댁에 온 것은 그날 날이 이미 어두운 뒤였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하여 마지막에는 역정을 내어 청지기를 불러서,

"호준이는 둘째 두고 호준이 아비가 와도 없다고 그래라."

고 명령을 한 뒤에도 한참을 더 있다가야 호준이가 겨우 흥선 댁을 찾아왔다.

대감에게서 '호준이 아비가 와도 안 만난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아침녘부터 진일을 그렇듯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을 아는지라, 청지기는 들어와서 호준이가 온 것을 알게 하고,

"안 계시다고 그냥 보내오리까?"

하고 여쭈어 보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끝에 이제는 결만 잔뜩 난 흥선은 안석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안 계시기는 왜 안 계셔? 계시지만 만나지 않는다고 나가서 그래라."

이것이 몸을 일으키면서 청지기에게 내린 흥선의 호령이었다.

청지기는 그러겠노라는 뜻으로 허리를 한번 굽히고 도로 나갔다.

그러나 나간 청지기가 명령대로 호준에게 전하려 할 때에, 흥선은 다시 큰소리로 청지기를 불렀다.

"일껏 왔는데 잠깐만 만나 볼 테니 이리로 모셔라."

아까의 명령은 급히 취소하여 버린 것이었다.

청지기의 인도로 호준은 흥선의 침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서 새해의 문안으로 먼저 절을 하였다.

호준이가 문으로 들어올 동안, 그리고 또한 문안을 하는 동안 흥선은 몸을 일으키고 눈을 들어서 먼저 호준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았다. 당부하였던 긴한 일에 대하여 호준은 어떠한 표정을 가지고 돌아왔나 - 말로써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얼굴에 나타난 표정으로써 그 대답을 얻으려 하였다.

그러나 호준의 얼굴에는 별다른 아무 표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저녁이 되면서 날이 몹시 차집니다."

추운 듯이 손을 비비며 호준은 먼저 이런 말을 하였다.

불혹(不惑)을 넘은 흥선이었다. 온갖 마음과 몸의 고생을 다 겪은 흥선이었다. 그러나 흥선의 마음은 이 유유히 날씨의 인사부터 하자는 호준의 태도 때문에 초조하였다.

 


5. 궁실의 어른 종실의 가장

그가 호준에게 부탁한 일이 심상하지 않은 일 - 그 대답의 좌우를 보아서는 혹은 운명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지도 알 수 없는 일이어늘,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준의 태도는 너무나 유유하였다.

한가로이 날씨의 인사를 하는 호준의 낯을 흥선은 마땅치 못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로라도 쬐라는 뜻으로 화로를 가리켰다.

"아마 무척 기다리셨읍지요?"

호준의 두 번째 말이었다.

"아니, 나도 어디 나갔다가 이제야 막 돌아온걸."

무슨 필요로 이런 거짓말을 하였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흥선은 이렇게 말하고 천천히 좌우로 건들건들 흔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 흥선은 호준에게 부탁하였던 일이 혹은 틀려 나가지 않았나 의심하여 보았다. 만약 마음대로 되었을 것 같으면 이렇듯 호준이 그 말머리를 유유히 꺼낼 까닭이 없기 때문이었다.

호준은 흥선을 따라서 몸을 좌우로 건들건들 흔들었다. 다시 말이 끊어졌다.

흥선이 호준에게 부탁하였던 것은 다른 일이 아니었다. 새해의 문안을 핑계삼아서 조대비께 가서 뵙기를 호준에게 그 알선을 당부한 것이었다.

흥선은 비록 종친이라 하나, 세력 없고 돈 없는 종친으로서, 궁중에서는 벌써 잊어버린 존재였다. 설혹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한 부랑자로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흥선은, 남의 알선이 없이는 대비께 가서 뵐 자격이 없는 인물이었다.

궁실의 어른이요 종실의 가장 되는 조대비는 오십을 눈앞에 바라보는 초로(初老)였다.

경인년(庚寅年) 오월 초엿샛날 그의 사랑하는 지아버님되는 익종(翼宗=당시 세자)을 잃은 때는, 그는 인생의 꽃동산을 겨우 내다본 스물 세 살 되는 해였다.

그로부터 반 오십 년간, 위로는 시어머님 되는 순조비(純祖妃)를 모시고, 아래로는 아드님 되는 헌종을 거느리고 외로운 공규를 지켜 내려온 것이었다.

기유년(己酉年) 유월 초엿샛날, 그의 가장 사랑하는 외아드님인 헌종이 승하를 한 뒤에도, 위로 시어머님을 모신 그는 신왕 영립에 대하여 한 마디도 말할 권리도 없이 뜻에 안 맞는 신왕을 묵묵히 맞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사년(丁巳年) 팔월, 그의 시어머님 되는 순조비 김씨조차 하세하자 조대비는 이 궁실의 어른이 되었다.

상감 철종 한 분밖에는 남인(男人)이 없는 궁실이었다. 역대의 군주가 모두 일찍이 승하를 하였기 때문에, 홀로 남은 대비·왕비·귀비·상궁·나인 등 여인만 가득히 차 있고, 남인이라고는 상감 한 분뿐이었다. 이러한 궁실에 조대비는 그 어른이었다.

위로는 거리끼는 아무 권력도 없고 아래로는 상감 및 많은 여인을 거느린 대비는, 현 궁실의 가장이었다. 궁실의 동태를 종묘에 고할 권리를 가진 유일한 어른이었다. 비록 정치에는 간섭할 권리가 없으나, 종실의 움직임에 관해서는 절대의 권리자이며, 다른 사람의 용훼를 허락하지 않는 최고 권위자였다.

인생의 꽃동산을 겨우 들여다본 때부터 반 오십 년간을 시어머님 순조비를 모시고 인종(忍從)이라 하는 덕을 두터이 쓰고 지나온 그인지라, 그의 마음속에 어떤 배포가 있는지는 뉘라서 알 사람이 없었다.

흥선이 이호준을 통하여 조대비께 가까이하고자 함은, 궁실의 어른 되는 조대비의 환심을 사서, 장래 입신상 무슨 도움이라도 얻고자 함이었다.

이호준은 특별히 조대비께 가까운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호준에게는 사위 되는 조성하(趙成夏)가 있었고, 조성하는 조대비의 친조카가 되는 사람이요, 또한 조대비의 총애를 매우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결련결련하여 흥선은 호준을 통하여 조성하를 사이에 두고 조대비께 가까이하여 보고자 한 것이었다. 오늘 새해의 문안으로 당연히 조대비께 가서 뵈일 조성하를 통하여, 그 기회에 흥선이 조대비께 뵈일 기회를 알선하고자 함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시정에 드나들어서 귀인이 경험하지 못할 별별 경험을 다 겪은 흥선은, 깊은 궁중에서 쓸쓸한 반 오십 년간을 보낸 조대비를 충분히 기껍게 하고, 따라서 그의 총애를 얻을 만한 자신은 있다. 그래서 더욱 호준의 회보를 초조히 기다린 것이었다.

잠시 좌우로 허리만 건들거리던 호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기다리실 줄은 알았지만 성하가 저녁때가 돼서야 겨우 나왔습니다."

"오늘 들어갔더랍디까?"

"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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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 2008년 8월 04 월요일, 16: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