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브러리!

 
Home 중/장편 소설 한국 중/장편 소설 운현궁의 봄 - 김동인 - 비로소 떨어진 패떼기

운현궁의 봄 - 김동인 - 비로소 떨어진 패떼기

E-mail 인쇄
User Rating: / 3
PoorBest 
Article Index
운현궁의 봄 - 김동인
이하응의 사는 법
망할놈의 강아지
명색이 왕족의 한 사람
쌀 한 되를 청하여 볼 집
세도가에서의 수모
벽제 소리
김병학과의 술자리
변변치 않는 난초도 그리고
변변치 않은 옷
대왕대비께 보내는 세찬만은
당쟁의 기원
당쟁의 새끼치기
사도세자의 비극도
설 곳 없는 종친들
보위를 놓친 흥선군
네 손이 가장 크다
王者의 덕
이호준을 기다리며
비로소 떨어진 패떼기
궁실의 어른 종실의 가장
<한꺼번에 보기>

 

4. 비로소 떨어진 패떼기

'준오! 이호준, 호준, 준오, 준호… 준오가 떨어지면 호준이 길보를 가져온다.'

왼편 머리에 있는 첫 쪽을 먼저 죄어 보았다. 골패 쪽에 익은 흥선의 손은 그 귀사기를 만져 볼 뿐으로 그것은 백륙임을 알았다. 그는 그것을 집어치우고 왼편 아래 귀의 쪽을 집었다.

그것은 아삼이었다.

이리하여 한 쪽 한 쪽 죄어 들어갈 동안 유희적 기분으로 시작한 이 놀음이 차차 그의 마음을 긴장시키기 시작하였다. 다섯 쪽 줄고 여섯 쪽 줄고 - 이렇듯 패 쪽이 줄어 들어갈 동안, 이 변변치 않은 놀음에서 받는 기괴한 긴장 때문에 패를 죄는 그의 손끝은 조금씩 떨리기까지 하였다.

처음에는 스물 다섯 쪽이던 것이 열 다섯 쪽으로, 열 세 쪽으로, 열 두 쪽, 열 한 쪽으로 줄어 들어갔다. 그러나 흥선이 이미 골라 놓은 준오의 짝인 또 한 개의 준오는 나오지 않았다.

남은 패는 다섯 쪽이 되었다. 네 쪽이 되었다. 세 쪽이 되었다. 드디어 두 쪽까지로 줄어 들어갔다.

두 쪽을 남겨 두고 흥선은 담배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천천히 담배를 붙여 물었다.

이제 두 쪽이다. 그 두 쪽 가운데에 아래쪽이 아니면 위쪽은 무론 준오일 것이다.

아래쪽이라 하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그 위쪽이 준오라 하면, 아직껏 떨어져 보지 못한 패가 여기서 비로소 떨어지는 것이었다. 담배를 붙여 문 뒤에 흥선은, 마치 쥐를 잡은 고양이 모양으로 잠시 남아 있는 두 개의 골패 쪽을 굽어보고 있었다.

이렇게 잠시 골패 쪽을 굽어보고 있다가, 흥선은 와락 달려들어서 아래쪽을 획 집어서 윗목으로 내어던졌다. 골패 쪽이 윗목으로 날아가는 동안, 골패 쪽에 익은 흥선의 눈은 그 쪽에 아로새겨 있는 붉은 점을 보았다. 그러면 그쪽도 준오는 아니었다.

흥선은 한 개 남아 있는 그 쪽을 들쳐 보지 않았다. 그리고 장침에 번듯 몸을 눕히고 말았다.

들쳐볼 필요가 없었다. 다른 쪽이 죄다 준오가 아닌 이상에는, 남은 쪽이 준오일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흥선은 몸소 그 패떼기를 발명한 이래, 떼어보기 몇십 몇백 번 - 아직껏 한 번도 떨어져 본 일이 없던 것이 오늘 비로소 떨어진 것이었다. 길보인지 흉보인지 이제 이를 회보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에 -

이호준이 흥선 댁에 온 것은 그날 날이 이미 어두운 뒤였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하여 마지막에는 역정을 내어 청지기를 불러서,

"호준이는 둘째 두고 호준이 아비가 와도 없다고 그래라."

고 명령을 한 뒤에도 한참을 더 있다가야 호준이가 겨우 흥선 댁을 찾아왔다.

대감에게서 '호준이 아비가 와도 안 만난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아침녘부터 진일을 그렇듯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을 아는지라, 청지기는 들어와서 호준이가 온 것을 알게 하고,

"안 계시다고 그냥 보내오리까?"

하고 여쭈어 보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끝에 이제는 결만 잔뜩 난 흥선은 안석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안 계시기는 왜 안 계셔? 계시지만 만나지 않는다고 나가서 그래라."

이것이 몸을 일으키면서 청지기에게 내린 흥선의 호령이었다.

청지기는 그러겠노라는 뜻으로 허리를 한번 굽히고 도로 나갔다.

그러나 나간 청지기가 명령대로 호준에게 전하려 할 때에, 흥선은 다시 큰소리로 청지기를 불렀다.

"일껏 왔는데 잠깐만 만나 볼 테니 이리로 모셔라."

아까의 명령은 급히 취소하여 버린 것이었다.

청지기의 인도로 호준은 흥선의 침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서 새해의 문안으로 먼저 절을 하였다.

호준이가 문으로 들어올 동안, 그리고 또한 문안을 하는 동안 흥선은 몸을 일으키고 눈을 들어서 먼저 호준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았다. 당부하였던 긴한 일에 대하여 호준은 어떠한 표정을 가지고 돌아왔나 - 말로써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얼굴에 나타난 표정으로써 그 대답을 얻으려 하였다.

그러나 호준의 얼굴에는 별다른 아무 표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저녁이 되면서 날이 몹시 차집니다."

추운 듯이 손을 비비며 호준은 먼저 이런 말을 하였다.

불혹(不惑)을 넘은 흥선이었다. 온갖 마음과 몸의 고생을 다 겪은 흥선이었다. 그러나 흥선의 마음은 이 유유히 날씨의 인사부터 하자는 호준의 태도 때문에 초조하였다.

 



등록 사용자만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왼쪽메뉴에서 로그인하거나 사용자등록하세요
+/- 댓글

3.23 Copyright (C) 2007 Alain Georgette / Copyright (C) 2006 Frantisek Hliva. All rights reserved."

최종 업데이트 ( 2008년 8월 04 월요일, 16: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