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브러리!

 
Home 중/장편 소설 한국 중/장편 소설 운현궁의 봄 - 김동인 - 王者의 덕

운현궁의 봄 - 김동인 - 王者의 덕

E-mail 인쇄
User Rating: / 3
PoorBest 
Article Index
운현궁의 봄 - 김동인
이하응의 사는 법
망할놈의 강아지
명색이 왕족의 한 사람
쌀 한 되를 청하여 볼 집
세도가에서의 수모
벽제 소리
김병학과의 술자리
변변치 않는 난초도 그리고
변변치 않은 옷
대왕대비께 보내는 세찬만은
당쟁의 기원
당쟁의 새끼치기
사도세자의 비극도
설 곳 없는 종친들
보위를 놓친 흥선군
네 손이 가장 크다
王者의 덕
이호준을 기다리며
비로소 떨어진 패떼기
궁실의 어른 종실의 가장
<한꺼번에 보기>

2. 王者의 덕

"재황아! 오늘이 이 해의 첫날이니, 금년 신수를 위해서 내 네게 두어 마디 물어 볼 말이 있다."

"네."

아무런 말이든 대답하겠습니다 하는 뜻이었다.

"왕자(王者)의 덕은 무엇이냐?"

"서민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올시다."

"또?"

"또…"

소년은 머리를 기울였다.

당시의 각 종친이며 권문들에게 '시정의 한 무뢰한'으로 알려져 있는 흥선은, 자기의 사랑하는 둘째아들을 데리고 집에서는 늘 왕자의 걸을 길과 왕자의 덕을 가르친 것이었다. 열 너덧 살부터 벌써 거리에 나서서 세상의 쓰고 단 온갖 경력을 다 맛본 흥선은, 자기의 경험과 자기의 본 바에서 짜낸 정치관과 도덕관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자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많은 경험이 쌓은 것인지라, 가장 철저한 종류의 것이었다.

"또, 잊었느냐?"

"또, 저 - 가만 계셔요. 저, 저 네 알겠습니다. 그, 저…"

하며 머리를 기울이는 소년에게 대하여 흥선은 깨쳐 주었다.

"편중 편애를 삼갈 것이다."

"네, 저도 생각은 났는데 미처 뭐랄지 말이 나오지를 않아서…"

"음, 그리고 또 있다."

"네."

"또 뭐냐?"

"…"

"처권(妻權)에 눌리지 말 것이다."

"네?"

소년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소년이 알아듣지 못한 것이 흥선에게는 도리어 다행이었다. 가슴속에 맺히고 또 맺힌 불만 때문에 불끈 그 말이 입밖에 나오기는 하였지만, 동시에 그런 말은 지금 가르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소년이 알아듣지 못한 것을 다행히 여기는 흥선은 자기의말을 속여 버렸다.

"처세에 밝아야 한다. 그리고 또 있다."

"네."

"또 자기의 자격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가장 웃사람이고, 따라서 만인의 표본이 돼야 할 사람인 줄을 알아야한다. 또 남을 눈 아래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호령할만한 사람이나 호령할 만한 일이 있을 때에는 호령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소년은 무슨 필요로 자기가 이런 학문을 배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기야 집안이 왕실의 친척인지라, 종친 된 자는 반드시 배워 두어야만 하는 것이거니 이만큼 알아두었다.

만약 이런 장면을 당시의 권문 척신들이 보았으면 그들은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었다. 단지 한 투전꾼이요 주정꾼이요 주책없는 인물로 알아오던 흥선이, 자기의 집에서는 자기의 둘째아들을 옆에 놓고 왕자의 덕이라는 것을 강술하는 줄을 알면, 흥선은 목이 열 개라도 당하지를 못할 것이었다.

표면 세상이 침을 뱉는 창피한 짓을 예사로이 하며 권문집 생일날이며 제삿날은 반드시 잊지 않고 기신기신 찾아다니는 흥선은, 집안에 있어서는 남이 예측하지 못할 규칙 바른 가장이며 자애와 엄격을 가진 지배자였다.

무식한 아버지 아래에서 아무 배움이 없이 길러난 줄로 세상에 알려져 있는 고종이, 후일 무서운 패력으로써 이 삼천리를 지배하고 지도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끊임없는 지도와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야인으로 길러난 맏아들은 할 수 없이 내버려두고, 흥선은 이 둘째 아들의 훈도에 전력을 다하였다. 남이 모르는 애, 남이 알았다는 큰일이 날 애를 쓰고 또 썼다.



등록 사용자만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왼쪽메뉴에서 로그인하거나 사용자등록하세요
+/- 댓글

3.23 Copyright (C) 2007 Alain Georgette / Copyright (C) 2006 Frantisek Hliva. All rights reserved."

최종 업데이트 ( 2008년 8월 04 월요일, 16: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