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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봄 - 김동인 - 네 손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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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봄 - 김동인
이하응의 사는 법
망할놈의 강아지
명색이 왕족의 한 사람
쌀 한 되를 청하여 볼 집
세도가에서의 수모
벽제 소리
김병학과의 술자리
변변치 않는 난초도 그리고
변변치 않은 옷
대왕대비께 보내는 세찬만은
당쟁의 기원
당쟁의 새끼치기
사도세자의 비극도
설 곳 없는 종친들
보위를 놓친 흥선군
네 손이 가장 크다
王者의 덕
이호준을 기다리며
비로소 떨어진 패떼기
궁실의 어른 종실의 가장
<한꺼번에 보기>

3. 조대비를 만나라

1. 네 손이 가장 크다

신유년(辛酉年) 정월 초하룻날 아침해가 불그스름히 동녘 하늘에 솟아올랐다.

이날 흥선은 일찍이 깨었다.

초라한 무명옷이나마 깨끗이 갈아입고 소세를 한 뒤에, 집안 아랫사람들에게 세배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맏아들 재면이 들어와서 세배를 하고 나갔다.

그 뒤에 그의 사랑하는 둘째아들 재황이 들어왔다. 열살 난 소년 - 얼굴은 고치와 같이 타원형으로 이쁘게 생기고 총명한 눈이 반짝이는 소년이었다.

명절이라고 역시 새 옷을 깨끗이 입은 소년은 들어와서 아버지에게 절을 하였다. 흥선은 소년을 굽어보았다. 흥선의 얼굴에는 명랑한 미소가 떠올랐다.

"응, 개똥이(재황의 애명)냐? 금년에는- 금년에는…"

흥선은 말을 주저하였다. 눈자위에 다시 미소가 흘렀다.

"금년에는…"

또 한번 뇌어 보았다. 그런 뒤에 지극히 작은 소리로,

"등극을 하셨다니 치하 드리옵니다."

한 뒤에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소년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장래 숱한 고난을 겪고 숱한 비극을 겪은 뒤에 태조적부터 전면히 물려 내려온 사직의 소멸까지 친히 눈으로 보고, 왕자로서 능히 겪기 어려운 가지가지의 일을 다 보아야 할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소년이었다. 영특한 눈, 총명스러운 눈으로 잠시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한 말은 듣지 못한 것이었다.

"재황아!"

"네?"

"좀 가까이 온!"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아버지의 앞에까지 다가앉았다.

자기의 앞에 다가앉은 아들의 손을 아버지는 잡았다. 그리고 잠시 아들의 얼굴을 굽어보다가 그 눈을 조금 더 떨어뜨려서 자기의 손에 잡혀 있는 조그만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을 굽어볼 동안 흥선은 몸을 떨었다.

이 자기의 손 속에 잡혀 있는 작다란 손 - 이 손은 능히 장래 이 나라라 하는 것을 긁어잡을 손이 될 것이냐?

돌아보건대, 지금부터 12년 전, 헌종이 갑자기 창덕궁에서 승하하였을 때, 하마터면 자기에게 굴러왔을는지도 모르는 그 행운이, 이제 장래에 이 소년의 위에 떨어질 날이 올 것인가?

이 작다란 손이 대보를 잡을 날이 언제 올 것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몽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혹은- 혹은…

"재황아!"

"네?"

"네 이 손은 큰 손이로다."

소년도 얼굴에 자랑스러운 듯한 웃음을 띄웠다.

"차손이 손보다도 큽니다."

"차손이?"

"네, 교동 사는 - 열 다섯 살이라도 제 손보다 작아요."

"그렇지! 차손이 - 장손이 - 김가 이가 할 것 없이 네 손이 가장 큰 손이라."

그리고 자기를 쳐다보는 소년을 환희와 긴장에 찬 마음으로 굽어보았다.

-큰 손이다. 팔도를 잡을 손이다. 삼백 주를 흔들 손이다. 삼천리를 덮을 손이다. 이 아비를 사닥다리 삼고 기어올라가서 아비의 상투를 잡을 손이다.

아아, 그런 날이 장차 올 때가 있을 것인가? 온갖 것의 위에 올라설 그 날이 이제 올 것인가?

흥선은 소년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소년의 등을 두어번 두드려 준 뒤에 다시 제 손을 들어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새로 빗기는 하였으나 장난 때문에 거칠고 또 거칠어진 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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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 2008년 8월 04 월요일, 16: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