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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3-2) - 거짓에 껍데기 씌운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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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3-2)
나는 원래 악마니까
누가 누구를 유혹해?
세상에 이야기가 많더라
처녀의 순결함이 부럽다
한숨과, 낯빛과, 자세에서
무슨 걱정이 생겼어?
망할 년들 같으니
뻔히 알면서 왜 속아
거짓에 껍데기 씌운 놈들
네 애인이 내게 보낸 연애 편지
그런 비겁하고 무책임한
남편과 세상을 속이려고
그저께 아침 차로 서울로
영원히 소멸할 수 없는 자취
무슨 말씀 없든?
그런 큰일낼 편지가
<한꺼번에 보기>




“그럼.”

하고 정선은 현의 말에 부득이한 찬성의 뜻을 아니 표할 수 없다.

“요새 조선 사내들은 모두 계집 후릴 생각밖에는 다른 생각은 없나 보더라. 그것이 요샛말로 모던인지도 모르지. 자 이것 보아요.”

하고 현은 편지들을 테이블 위에 쏟아놓고 찾아내기 쉽도록 골패 젓듯 뒤저어서 테이블의 면적이 허하는 한에서 널따랗게 벌여놓고, 그 중에서 옥색 양 봉투에 영문으로 겉봉을 쓴 편지 하나를 골라서,

“자, 이거 뉘 글씬지 알어?”

하고 정선의 눈앞에 든다.

“응, 그거 이 박사 글씨 같구려.”

하고 정선도 놀란다. 정선도 꼭 이런 글씨의 편지를 가끔 받는 까닭이다.

“올라잇.”

하고 현은 봉투 속에 있는 편지를 꺼내어서 읽는다.

‘오 나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닥터 미스 현이시여!

전에 드린 수차 편지에 한번도 답장을 받지 못한 것을 조금도 원망치 아니하옵니다. 그것은 이유가 없지 아니하오니, 대개 첫째는 소생의 전 심령을 다 바치는 지극한 사랑은 미스 현에게 향하여 사랑 이외의 아무러한 감정도 일어나지 못하게 함이옵고, 둘째는 미스 현께서 아직 소생의 인격과 성의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심입니다.

세상에는 소생에 관하여 여러 가지 풍설이 있사오나 그것은 전연 무근지설이오며, 소생의 명예를 해하려고 시기하는 자들이 조작한 것입니다. 소생은 지금까지에 여성 친구를 여러 사람 가진 일은 있사오나 어떤 여성에게 대하여 사랑을 바친 것은, 오, 하느님이시어, 오직 미스 현 한 분뿐이오며, 과거와 현재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미래와 영원에도….’

여기까지 읽다가 현은,

“자, 이 작자 하는 소리 보아요. 다른 여자는 다 친구요, 애인은 나 하나뿐이라나. 허허. 아마 이런 소리는 누구에게나 했을 소린 줄을 내가 모르는 줄 알고. 순례, 서분이한테도 이 소리는 했을 게다. 네게는 안했든? 허기는 이 작자만은 아니야. 여기 있는 편지들을 보면 대개는 내게 대한 것이 첫사랑이라지. 사랑에 거짓말을 하는 놈들이니 다른 일에야 더 말할 것 있나.

그러니깐 나는 이 작자들을 안 믿는단 말야. 누구누구 하는 놈들이 다 거짓에 껍데기 씌운 놈들이어든, 셀피슈하고. 대체 별소리가 다 많아요. 저는 아직 정남이라는 둥, 상처를 했다는 둥, 가문이 양반이라는 둥, 귀여운 소리를 하는 애숭이도 있고, 어떤 것은 사뭇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작자도 있고, 또 어떤 작자는 내가 혼자 사는 것이 가엾으니 자기가 나를 보호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되마 하는 자선가도 있고… 대체 없는 소리가 없지. 또 이거 하나 보련?”

하고 현은 기름한 흰 봉투에 먹으로 썩 잘 쓴 편지 한 장을 골라 들고,

“이것 보아요? 이게 누군데?”

하고 편지 끝에 있는 서명을 보인다. 그것은 모 교육자요, 종교가다.

“이 어른도 그런 편지요?”

하고 정선은 더 크게 놀랐다.

“자, 이거 또 하나 보아. 이건 누군데?”

하고 또 한 편지를 보인다.

그것을 본 정선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것은 어떤 이름난 교육자였다.

“또, 이건.”

하고 굉장히 큰 봉투 하나를 집어든다. 정선은 웃지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나 많은 어떤 재산가였다. 현도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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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 2008년 5월 16 금요일, 00: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