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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3-2) - 무슨 말씀 없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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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3-2)
나는 원래 악마니까
누가 누구를 유혹해?
세상에 이야기가 많더라
처녀의 순결함이 부럽다
한숨과, 낯빛과, 자세에서
무슨 걱정이 생겼어?
망할 년들 같으니
뻔히 알면서 왜 속아
거짓에 껍데기 씌운 놈들
네 애인이 내게 보낸 연애 편지
그런 비겁하고 무책임한
남편과 세상을 속이려고
그저께 아침 차로 서울로
영원히 소멸할 수 없는 자취
무슨 말씀 없든?
그런 큰일낼 편지가
<한꺼번에 보기>




정선은 밥을 먹어가며 순이에게 이 말 저 말을 물었다. 무심코 묻는 듯하면서도 묻는 정선에게는 여자에게 특유한 은미한 계획이 있었다.

“내가 안 온다고 걱정하시든?”

하고 정선은 유순을 통하여 남편의 속을 떠보려고 하였다.

“그럼요.”

하고 대답은 해놓고는 유순은 어떤 대답을 해야 옳을까고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되, 정선의 눈치를 보아서 하려는 듯이 심히 날카로운 눈으로, 그러나 그 날카로움을 웃음으로 싸서 정선을 살펴보다가,

“날마다 기다리셨답니다. 차 시간만 되면 저 등성이에, 저기 저 등성이 말씀야요(하고 창을 열고 가리키며), 저 등성이에 올라가시어서 정거장 쪽을 바라보시고는 오늘도 안 오는군, 그러신답니다.”

“편지도 기다리든?”

하고 정선은 물을 필요도 없는 말을 묻는다.

“그럼요. 우체 사령이 왔다가면 퍽으나 섭섭해하시는걸요.”

하고 유순은 허숭이가 길게 한숨을 내어쉬고 무슨 생각에 잠기던 것을 생각하고 그 모양을 정선에게 더 자세히 그리려 하였으나, 자기가 허숭에게 너무 깊이 관심하는 것을 정선이가 되려 이상히 알까 보아 그만하고 입을 다물었다.

“서울 가시기 전에 무슨 말씀 없든?”

하고 정선은 무심코 돌아오는 듯이 목적한 정통에 맞는 살을 쏘았다.

유순은 이 말에 대답하기 전에, 그저께 식전 차를 타러 떠날 적에 가방을 들고 주재소 앞 큰길까지 나아간 자기를 숭이가 어깨를 껴서 정답게 한번 안아주며,

“내 갔다올께.”

하고 손을 꼭 쥐어주던 것이 생각나서 낯이 붉게 됨을 깨달았다.

이것은 처음 되는 일이었다. 그 아내 정선에게 충실하여 유순의 손길 하나 건드린 일이 없던 허숭이가 어찌하여 유순에게 이만한 친절을 보였을까? 그것은 다만 먼 길을 떠나는 작별일까. 또는 아내 되는 정선에게 대한 의심과 불만이 숭에게 남편으로서 받는 도덕적 제한을 늦추어준 것일까. 또는 진정으로, 다만 털끝만한 발표도 없이 숭에게 바치는 순의 뜨거운 사랑에 대한 대답을 작별의 순간, 춥고 어둡고 감회 많은 순간에 잠깐 드러낸 것일까.

“별말씀 없으셨셔요. 어디 무슨 말씀 하시나요.”

하고 유순은 정선에게 속 뽑히지 아니할 차비를 한다.

“그 전날 무슨 편지 안 왔어?”

하고 정선은 숭늉에 밥을 만다.

“편지가 왔던가 보아요.”

하고 순은 대수롭지 아니한 것같이 대답한다.

“무슨 봉투? 서양 봉투, 일본 봉투?”

하고 정선은 중요한 단서나 잡은 듯이 밥술을 대접에 걸쳐놓고 묻는다.

“서양 봉툰가 보아요.”

“그래. 선생님이 그 편지를 보시고 무어라대?”

“전 자세히는 못 보았어요. 허지만 나중 보니깐 그 봉투가 온통 조각조각 찢어졌어요.”

“그래, 그 찢어진 것 어디 있니?”

“아궁이에 넣어서 태워버렸죠. 태워버리라고 하시는 걸요.”

“한 조각도 없어, 요만큼도? 글자 한 자라도 붙어 있으면 좋으니.”

하고 정선은 애가 탔다. 그것이 뉘 편지인가, 아무렇게 해서라도 알고 싶었다.

“없습니다. 다 태운걸요.”

하고 유순은 뚝 잡아뗐다.

“그래두우 나가 찾아보우, 혹시 한 조각 남았나, 어여.”

하고 정선은 정답게 유순을 졸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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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 2008년 5월 16 금요일, 00: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