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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정선은 손으로 낯을 가리고 엎드렸다. 차마 그 다음에 쓴 글귀를 읽을 수 없는 까닭이었다. 마치 남편이 어젯밤 자기가 한 일을 다 보고 가서 자기를 책망하느라고 쓴 편지인 것 같았다.
편지를 다 보고나서 정선은 이불 위에 폭 엎드려버렸다. 그러나 이 때에 정선에게는 뉘우침보다도 무서움의 힘이 있었다.
‘내가 만일 정선을 배반하거든 정선은 칼로 내 심장을 찌르시오’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정선의 눈 앞에는 시퍼런 칼을 들고 선 숭의 모양이 보인 것이다.
바로 이 때다. 이 때에 유월이가,
“마님 잿골 서방님이 오셨어요.” 하였다.
“아직 안 일어났다고 그래!”
하고 고개도 들지 아니하고 화를 내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유월이가 나가기도 전에,
“아직 안 일어났소?”
하고 반말지거리를 하며 영창을 홱 열고 들어왔다.
“들어오지 말아요… 나가요!”
하고 정선은 이불 위에 엎어진 채로 몸을 흔들며 부르짖었다.
갑진은 그런 소리는 들은체 만체,
“어, 이건 왜 이러오? 허기는 정선씨 그 포즈도 어여쁜데. 미인이란 아무렇게 해도 어여쁜 법이야. 아, 코대크를 가지고 올걸 그랬는걸. 얘, 유월아, 너는 나가! 왜 거기 버티고 섰어?”
하고 유월을 향하여 눈을 흘긴다.
“나가요! 왜 남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남의 방에 들어오시오? 어서 나가라면 나가시오!”
하고 정선은 눈물과 흥분으로 어룽어룽한 낯을 번쩍 뒤로 돌리면서 갑진을 노려보며 물어뜯기라도 할 듯이 화를 낸다.
갑진은 비로소 정선이가 울고 있는 것을 알고 참으로 성낸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의외로다 하는 듯이 잠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정선의 심상지 아니한 양을 바라보고 섰더니,
“하하하하.”
하고 갑진은 무슨 크게 우스운 일이나 보는 듯이 껄껄 웃고는,
“오, 알았소. 예수교당에서 그 쑥들이 무에라 하는 양심이란 것이 발작했구려. 응, 옳지. 하느님의 딸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판이로구려. 어, 우리 정선씨 천당가겠는걸, 허지마는 천당에는 고이(연애)라는 것이 없다던걸. 모두 쑥들만 모여서 주여, 주여 하고 정선이 모양으로 물보다도 싱거운 눈물이나 짜고….”
하고 웃음 절반 말 절반으로 지절대는 것을 정선은,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그런 말법 어디서 배웠소? 이 악마 같으니!”
하고 몸을 부르르 떤다.
“악마? 거, 좋은 말이오. 나는 원래 악마니까, 허지만 남편 있는 여편네가 서방질하는 것도 천사라고 쑥들은 아니하던 모양인데.”
하고 또 한번 갑진은 껄껄 웃는다.
유월이는 갑진이가 전에 없이 마님에게 버릇없이 구는 것을 보고 또 정선이가 분해서 치를 떠는 것을 보고,
“그게 다 무슨 말씀이셔요?”
하고 쇳소리 같은 소리를 빽 지르며 갑진을 흘겨본다. 유월이는 평소에 갑진이가 정선을 엿보고 추근추근하게 다니는 것이 절치부심(切齒腐心)하게 미웠었고, 더구나 유월이가 가장 미워하는 어멈이 갑진의 편이 되는 것이 미웠던 판이라 갑진을 칼로 찔러 죽이고도 싶었다.
“요년! 요 발칙한 년 같으니.”
하고 갑진은 주먹을 들어 유월을 위협하고,
“흥, 악마! 하룻밤 서방도 서방이거든 날더러 악마라고.”
하고 빈정대기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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