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유월아, 내 돈 주랴?”
하고 이건영은 돈지갑을 꺼내었다.
“싫어요. 제가 왜 돈을 달랬어요?”
하고 대문 그늘로 몸을 비키며,
“모르시는 양반한테 제가 왜 돈을 받아요?”
하고 유월의 소리는 퍽 야멸찼다.
이 박사는 오십전박이 은전 한 푼을 유월의 손에 쥐어주며,
“얘, 아씨가, 아니 너의 마님이 누구하고 나가든? 어디로 가신다든?”
하고 겨우 들릴락말락한 음성으로 물었다.
유월이는 이 박사가 쥐어주는 돈을 내어던지지는 아니하였다. 그리고
‘옳지, 어멈도 잿골 서방님에게 이렇게 돈을 받았구먼. 그래서 잿골 서방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구먼’
하였다.
“응, 누구하고 나가셨니?”
하고 이 박사는 또 한번 물었다.
“저 잿골 서방님허구 나가셨어요. 훈련원 나가셨다가 어디 저녁 잡수시러 가셨어요. 늦게 들어오신다고요.”
오십전 은화의 효과는 당장에 났다.
그러나 그 효과가 정선을 집에 혼자 있게는 못하였다.
이 박사는 낙심하고 돌아섰다. 이제는 어디로 가나. 순례의 집으로 갈까. 정서분의 집이나 찾아갈까.
정서분은 독자도 기억하실는지 모르거니와 체육 교사다. 뚱뚱하고, 얼굴빛이 푸르고, 목소리가 좀 쉬인 여자다. 그는 정선에게도 선생이요, 순례에게도 선생이다. 그리고 이 박사를 짝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박사는 싫어하는 사람이다. 싫어하면서도 자기를 따르는 여자가 달콤한 말 한마디와 한번 껴안아주는 것쯤의 적선을 아낄 이 박사는 아니다. 그 때문에 정서분은 행여나 하고 이 박사의 사랑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박사는 하릴없이 정서분의 집을 찾았다.
정서분은 이 박사를 반가이 맞았다. 그리고 허겁지겁으로 과일을 사오고 차를 준비하였다. 그 정경은 차마 볼 수 없을이만큼 애처로왔다. 돈 없고 인물 없는 정서분, 그리고 나이 많은 정서분에게는 이 박사에게 대한 사랑이 첫사랑이었다. 아마 이 박사가 그의 사랑을 알아주지 아니한다면 그는 다시 남자를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또는 그의 굳은, 그리스도교적 도덕관은 그가 이 박사 이외 다른 남자를 사랑하기를 허치 아니할 것이다.
아무리 정서분이라도 밤 전기등 밑에 단둘이 마주앉아서 보면 여성적인 점,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없지도 아니하였다. 이 박사의 예민한 눈, 여성에 예민한 눈이 그것을 못 발견했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정선을 찾아가서 실패하고, 순례에게 창피를 당하고, 근래에 도무지 여성의 부드러운 맛을 못 본 이 박사는 ‘정서분이라도’하는 가엾은 생각을 아니할 수 없이 되었다.
정서분이 사과를 벗겨 쪼개어서 삼지창에 꿰어,
“잡수셔요.”
하고 이 박사에게 줄 때, 이 박사는 웃으면서 손을 아니 내어밀고 입을 내어밀었다. 정서분은 잠시 주저하였으나 얼른 사과쪽을 이 박사의 입에 넣어주고는 마치 십 육칠 세의 어린 처녀 모양으로 수삽하여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 순간에 이 박사의 팔은 정서분의 목으로 돌아, 서분의 몸이 이 박사의 가슴에 안겼다. 물론 서분은 반항하지 아니하였다. 서분의 숨결은 높고 가슴은 뛰었다. 서분은 지극한 기쁨과 감격에 거의 어린 듯 정신이 몽롱함을 깨달았다.
이날 서분은 삼십 년 만에 처녀를 잃었다. 그는 혼인 예식 없는 남녀의 관계를 죄로는 알았으나, 그러나 서분에게 있어서는 사랑하는 남자 - 일생의 남편에게 몸을 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누구, 누구, 말이 많던 여자들 중에서 자기만이 이 박사를 자기 것을 만들었다고 기뻐하였다.
“이 박사.”
하고 서분은 흐트러진 머리와 매무시로 가려는 이 박사를 붙들고 불렀다.
“이 박사! 이제 나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영원히. 부활한 뒤까지도 당신의 아내입니다.”
“…”
이 박사는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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