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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3-1) - 돈 없고 인물 없으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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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3-1)
아마 어리석은 일이겠지
가끔 오는 잿골 김 서방
억제할 수 없는 유혹
갑진을 그리워하는 마음
할 일 없는 여자들
그 곡조 대단히 좋소
장난으로 연주한 '슬픔'
왜 악마의 기억을
무서운 생각까지도
돈만이 일생의 목적
아씨는 계시냐?
돈 없고 인물 없으나마
미친 사람처럼 웃는 갑진
우리끼리 축배나
하필 이때 남편의 편지가
부디 교제를 삼가시오
<한꺼번에 보기>

 



“얘 유월아, 내 돈 주랴?”

하고 이건영은 돈지갑을 꺼내었다.

“싫어요. 제가 왜 돈을 달랬어요?”

하고 대문 그늘로 몸을 비키며,

“모르시는 양반한테 제가 왜 돈을 받아요?”

하고 유월의 소리는 퍽 야멸찼다.

이 박사는 오십전박이 은전 한 푼을 유월의 손에 쥐어주며,

“얘, 아씨가, 아니 너의 마님이 누구하고 나가든? 어디로 가신다든?”

하고 겨우 들릴락말락한 음성으로 물었다.

유월이는 이 박사가 쥐어주는 돈을 내어던지지는 아니하였다. 그리고

‘옳지, 어멈도 잿골 서방님에게 이렇게 돈을 받았구먼. 그래서 잿골 서방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구먼’

하였다.

“응, 누구하고 나가셨니?”

하고 이 박사는 또 한번 물었다.

“저 잿골 서방님허구 나가셨어요. 훈련원 나가셨다가 어디 저녁 잡수시러 가셨어요. 늦게 들어오신다고요.”

오십전 은화의 효과는 당장에 났다.

그러나 그 효과가 정선을 집에 혼자 있게는 못하였다.

이 박사는 낙심하고 돌아섰다. 이제는 어디로 가나. 순례의 집으로 갈까. 정서분의 집이나 찾아갈까.

정서분은 독자도 기억하실는지 모르거니와 체육 교사다. 뚱뚱하고, 얼굴빛이 푸르고, 목소리가 좀 쉬인 여자다. 그는 정선에게도 선생이요, 순례에게도 선생이다. 그리고 이 박사를 짝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박사는 싫어하는 사람이다. 싫어하면서도 자기를 따르는 여자가 달콤한 말 한마디와 한번 껴안아주는 것쯤의 적선을 아낄 이 박사는 아니다. 그 때문에 정서분은 행여나 하고 이 박사의 사랑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박사는 하릴없이 정서분의 집을 찾았다.

정서분은 이 박사를 반가이 맞았다. 그리고 허겁지겁으로 과일을 사오고 차를 준비하였다. 그 정경은 차마 볼 수 없을이만큼 애처로왔다. 돈 없고 인물 없는 정서분, 그리고 나이 많은 정서분에게는 이 박사에게 대한 사랑이 첫사랑이었다. 아마 이 박사가 그의 사랑을 알아주지 아니한다면 그는 다시 남자를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또는 그의 굳은, 그리스도교적 도덕관은 그가 이 박사 이외 다른 남자를 사랑하기를 허치 아니할 것이다.

아무리 정서분이라도 밤 전기등 밑에 단둘이 마주앉아서 보면 여성적인 점,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없지도 아니하였다. 이 박사의 예민한 눈, 여성에 예민한 눈이 그것을 못 발견했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정선을 찾아가서 실패하고, 순례에게 창피를 당하고, 근래에 도무지 여성의 부드러운 맛을 못 본 이 박사는 ‘정서분이라도’하는 가엾은 생각을 아니할 수 없이 되었다.

정서분이 사과를 벗겨 쪼개어서 삼지창에 꿰어,

“잡수셔요.”

하고 이 박사에게 줄 때, 이 박사는 웃으면서 손을 아니 내어밀고 입을 내어밀었다. 정서분은 잠시 주저하였으나 얼른 사과쪽을 이 박사의 입에 넣어주고는 마치 십 육칠 세의 어린 처녀 모양으로 수삽하여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 순간에 이 박사의 팔은 정서분의 목으로 돌아, 서분의 몸이 이 박사의 가슴에 안겼다. 물론 서분은 반항하지 아니하였다. 서분의 숨결은 높고 가슴은 뛰었다. 서분은 지극한 기쁨과 감격에 거의 어린 듯 정신이 몽롱함을 깨달았다.

이날 서분은 삼십 년 만에 처녀를 잃었다. 그는 혼인 예식 없는 남녀의 관계를 죄로는 알았으나, 그러나 서분에게 있어서는 사랑하는 남자 - 일생의 남편에게 몸을 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누구, 누구, 말이 많던 여자들 중에서 자기만이 이 박사를 자기 것을 만들었다고 기뻐하였다.

“이 박사.”

하고 서분은 흐트러진 머리와 매무시로 가려는 이 박사를 붙들고 불렀다.

“이 박사! 이제 나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영원히. 부활한 뒤까지도 당신의 아내입니다.”

“…”

이 박사는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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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 2008년 5월 16 금요일, 00: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