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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맘이나 돌리기야.’
하고 쉽게 생각하니 맘이 약간 만족하였다.
‘정선이나 찾아가보고.’
하고 이 박사는 발을 돌려 다시 정선의 집으로 향하였다.
‘순례가 나오는 것을 보니 정선이가 집에 있는 듯도 하다. 갑진이만 아니 와 있으면 정선의 아름다운 모양을 실컷 즐기기로니 순례와 혼인하는 데 무슨 방해가 되랴. 내일은 순례 집에를 가기로 하고 오늘 밤에는 정선의 집에서 놀자. 만일 정선이가 있고 갑진이만 없으면 공회당 무용 구경을 데리고 가보자.’
이러한 분홍빛 생각을 하며 정선의 집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박사는 정선을 곁에 놓고 벌거벗은 젊은 여자들이 춤을 추는 양을 그려볼 때에 순례에게 받은 모욕도 다 잊어버렸다. 오직 유쾌하기만 하였다.
“이리 오너라.”
하고 이 박사는 정선의 집 대문에 섰다. 전등불빛에, ‘許崇’이라고 하얀 나무패에 써붙인 문패가 보였다. 그 문패는 아직 때도 묻지 아니하였건마는 이 부부는 벌써 낡아빠져서 틈이 났구나 하였다.
그러나 자기는 계집애들의 입술을 따라서 이 꼴을 하고 돌아다닐 때에는 허숭이가 돈 있는 어여쁜 아내도 다 내던지고 농촌에 들어가 농민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히로익한 것이 더욱 숭고해 보이는 대신에 자기의 생활이 너무도 무가치함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 박사는 역사를 배우고 사회학을 배우고 윤리학까지 배우고 성경까지도 배웠다. 무엇이 사람의 일로서 숭고한 것인지를 스스로 분별할 지식의 힘이 있을 뿐더러 청춘 남녀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할 만한 능력을 얻기 위하여 논리학과 수사학과 웅변학과 심리학까지도 배웠고 또 문학도 배웠다.
그렇지마는 그의 타고난 이기적이요, 향락적인 천성은 이 모든 공부 때문에 그리 큰 영향을 받지 못하였다. 그는 이 모든 값비싼 지식과 수양과 능력을 오직 돈 있는 미인을 후리기에만 이용하였다. 다만 조선이 그에게 돈 있는 미인을 아내로 주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이 능력을 그가 노상 말하는 바와 같이 조선과 조선 민족을 위하여 쓸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다 하면, 진실로 그렇다 하면 조선의 미인 딸 둔 부자는 다 조선의 죄인이다. 이 박사로 하여금 위대한 민족적 사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들이니까. 은경을 이 박사에게 주지 아니한 한은 선생도 죄인이다.
“누구세요?”
하고 문을 여는 것은 유월이다.
“시골서 올라오셨니?”
하고 이 박사는 허숭을 찾아온 모양을 보이려 하였다.
“영감마님입시요? 안 올라오셨습니다.”
하고 유월이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다. 그것은 이 박사가 올 때마다 그렇게 묻는 까닭도 있거니와, 네 시에 다녀가고 아직 경의선 차시간도 아니되었는데 어떻게 그 동안에 허숭이가 올라올 수가 있으리라고, 빤히 속이 보이는 소리를 하는 것이 우스웠던 것이다.
“거, 원, 어째 안 올까. 아씨는 계시냐?”
하고 이 박사는 있다는 대답을 기다렸다.
“아씨… 우리 댁 마님입시요?”
하고 유월이는 이 박사의 말을 교정한다. 영감의 부인이 아씨실 리가 있나, 유월이는 괘씸스럽게 생각하였다.
“어디 젊으신 어른을 마님이라고 부르려니까 말이 잘 아니 나오는구나, 미안스러워서.”
하고 유월의 뺨을 만지려 하는 것을 유월이는 뾰로통하고 고개를 돌린다. ‘이 뻔뻔스럽고 추근추근한 녀석이’ 하고 유월이는 속으로 침 뱉었다. 갑진이, 이 박사, 곽 의사, 그밖에도 몇 ‘녀석’, 정선을 찾아와서 시시덕거리는 사람들이 모두 개와 같이 미웠다.
유월이는 개를 싫어한다.
“마님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 늦게나 들어오신다고 전화가 왔던걸요.”
하고 유월이는 이 박사가 다시 오지 못할 예방선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