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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은 집을 짓기에, 동네 사람들의 병을 구완하기에, 서울에 두고 온 아내에 대한 뉘우침, 유순에게 대한 새 사랑의 괴로움, 아직 자리 잡히지 아니한 생활과 사업에 대한 불안과 초조, 동네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더러는 비웃음과 악의로 자기를 훼방하고 방해함에 대한 분한 마음, 이런 시름, 저런 근심으로 몸과 마음이 심히 가빴다.
몸이 노곤하고 눕고는 싶으면서도 누우면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이따금 자기의 결심에 대하여 의심까지도 생겼다. 그러나 숭은 이 모든 것을 의지력으로 눌렀다. 한 선생을 생각하고 참았다.
동네 사람들의 병도 한 사람만 죽이고는 다 나았다. 뼈와 껍질만 남은 병자들이 귀신같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의사는 약속대로 사흘에 한번씩 한 일 주일 동안 와서 치료해 주었다. 이 의사가 이 동네에 부지런히 오는데는 순을 보고 싶은 맘이 반 이상은 되었다. 그는 병을 다 보고 나서도 동네로 휘휘 돌아다니며 어떻게 해서든지 순을 한 번 보고야 돌아갔다.
그러나 그 동안에 숭은 장질부사 치료하는 법을 대강 배웠다. 해열제를 써서 안 되는 것, 땀을 내려고 애쓰는 것, 약이라고는 소화제와 강심제와 지갈하는 것을 먹일 뿐인 것, 오줌 똥을 잘 소독해야 하는 것, 미음과 비타민을 먹여야 되는 것, 장출혈을 주의해야 되는 것, 안정해야 되는 것, 위험이 어디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대강은 배웠고, 관장하는 것, 피하주사 놓는 것도 배웠다. 그래서 간호부가 가질 만한 지식은 가지게 되었다.
병자의 집에서는 밤중에라도 겁이 나면 숭에게 뛰어 왔다. 그러면 숭은 집에 준비해 두었던 약품과 기구를 가지고 달려갔다. 병이 위태한 경우에는 숭은 병자의 곁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가끔 있었다. 이런 일이 숭의 건강을 많이 해하였다.
다른 병자들이 거의 다 완쾌할 때가 되어서 순의 고모(과부로 와 있는 이)가 발병하였다. 한참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신열이 높았다.
숭의 소견에 그것도 티푸스였다.
유 초시는 자기 손으로 처방을 내어서 한약을 몇 첩 지어다 먹였으나 물론 효과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유 초시 자신도 열이 나서 머리를 동이고 드러눕게 되었다. 이 때 전후하여 난봉으로 돌아다니던 순의 오라버니가 읍내에서 황기수를 때리고 잡혀서 갇히었다. 황기수를 때린 것은 물론 그 누이에게 한 폭행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러한 소식이 유 초시의 맘을 더욱 불편하게 하였다. 유 초시는 친정에 가 있는 며느리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앓는다 칭하고 오지 아니하였다. 이 며느리는 남편에게는 소박을 맞고 시집에 먹을 것은 없고 한 데 화를 내어서 먹기는 넉넉한 친정으로 달아나 버린 지가 반년이나 되어도 시집에는 발길도 아니하였다.
팔집의공 제사(유초시가 가장 존경하는 조부의 기일)는 유 초시 집에서는 가장 중대한 일이었다. 집의공 제사날에도 며느리가 아니 온다고 유 초시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었다. 이 때에는 유 초시는 반드시 광 속에 몰래 술 한 항아리를 빚었다.
집의공 제사에 사온 술을 써서 쓰느냐 하는 고집에서였다. 유 초시는 열 있는 몸을 가지고 일어나서 술 항아리를 꺼내어 손수 청주를 떠서 제주를 봉하고, 순을 지휘하여 제물을 차리게 하였다. 유 초시의 눈은 붉고 몸은 가누어지지를 아니하였다.
유 초시는 허둥허둥하는 걸음으로 아랫방에 내려가 앓는 누이동생을 들여다보았다.
“웬만하면 좀 일어나 보려므나. 순이년이 무얼 할 줄 아니.” 하였다.
이것은 억지였다. 그러나 조부의 제사에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하여도 좋았다 - 유 초시의 생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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