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2)
심순례의 마음은 차라리 윤명섭에게로 끌렸다. 만일 어느 편으로 끌린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러나 정서분의 마음은 단정적으로 이건영 박사에게로 끌렸다.
순례의 맘이 명섭에게로 끌린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대개 그의 아버지는 본래 가난한 집 유복자로서, 그 어머니조차 일찍 여의고 외가로 고모의 집으로 불쌍하게 자라나서 종로 어느 지물전에 사환으로 다니다가 점원이 되었다가 그가 삼십이나 되어서 월수로 돈을 좀 얻어가지고 독립하여 지물전을 내어서, 이래 근 이십 년간 신용과 근검과 저축으로 볏백이나 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치부책에 치부를 할 만한 글밖에 몰랐다.
그는 술도 아니 먹고, 놀러도 아니 다니고, 재산이 생긴 뒤에도 첩도 아니 얻고(종로 상인은 열에 아홉은 중년에 돈이 생기면 첩을 얻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꼭 가게와 안방을 세계로 삼고 왔다갔다할 뿐이었다.
순례의 어머니 역시 그 남편과 근검, 저축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였다. 그의 동무들이 모두 금비녈세, 비취비녈세, 하부다일세, 굿일세, 물맞일세 하건마는, 그는 소화불량(그의 본 병이었다)이 심하기나 해야 악박골 약물에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이른 새벽에 다녀올까, 그리고는 시흥 사는 친정에도 큰일이나 있기 전에는 가지 아니하였다. 오직 내외가 늦게 얻은 딸 순례 하나를 기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을 뿐이었다.
그래서 순례는 여자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서 남들은 그만하면 시집을 보내라는 것도 물리치고 순례에게 음악 재주가 있다고 하여 이화전문학교의 음악과에 넣은 것이었다.
“내야 음악이 무엇인지 전문학교가 무엇인지 아오? 그저 재산 물려줄 것도 없으니깐두루 나중에 무슨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굶어 죽지나 말라고 자격이나 하나 얻어주려고 그러지요.”
하는 것이 순례아버지의 순례 전문교육에 대한 의견이었다.
이러한 자립, 근검, 절제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순례는 예술적 천품을 가지면서도, 마치 시골 농가에서 세상 모르고 귀히 자라난 처녀와 같이 모양낼 줄도 모르고 말숱도 없고, 천연스럽고 정숙스러웠다. 처음 보면 무언하고 유치한 것도 같지마는, 속에는 예술가의 예민한 감정이 있었다.
이러하기 때문에 순례는 호화로운 이 박사보다도 저와 같이 검소하고 겸손한, 어찌 보면 못생긴 듯한 명섭이가 도리어 맘을 끈 것이었다.
순례는 아직 학교 선생 외에는(그것도 교실에서만) 일찍 남자와 교제해본 일이 없었다. 있었다면 전차 차창일까. 간혹 그의 뒤를 따르는 남자 학생들이 없음이 아니었지마는 그는 천연하게 본 체 만 체하였다. 그 남학생들은 얼마를 따라다니고 건드려보다가는 실망하고 달아나버렸다.
순례가 한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이화에 들어가서부터이었다. 순례는 이화에 들어가서 비로소 조선 사람 남자 선생을 대해보았다. 그 전에는 보통학교에서도, 늘 조선 남자선생 담임 밑에 있을 기회가 없었다.
순례는 그 부모에게 한 선생 말을 하였다.
“아주 점잖으시고, 엄하시고, 친절하시고, 잘 가르치시고, 또 사회에 명망도 높대.”
이것이 순례가 그 부모에게 한 한 선생에 대한 보고였다. 그 부모는 교육계나 사회에 나와 다니는 인물을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딸 순례를 믿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었다. 그래서 한번 순례의 아버지가 한 선생을 찾아가서 딸의 장래를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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