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실이다.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파기가 싫어서 아니꼽게 놀고먹어 보겠다고 시골 남녀 학생들이 서울로 모여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선조 대대로 피땀 흘려 갈아오던 논과 밭과 산 - 그 속에서는 땀만 뿌리면 밥과 옷과 채소와 모든 생명의 필수품이 다 나오는 것이다 - 을, 혹은 고리대금에 저당을 잡히고, 혹은 팔고 해서까지 서울로 공부하러 오는 학생이나, 자녀를 보내는 부모나, 그 유일한 동기는 땅을 파지 아니하고 놀고먹자는 것이다.

얼굴이 검고 손이 크고 살이 거칠고 발도 크고 눈이 유순하고 몸이 왁살스러운, 대대로 농촌의 자연에서 근육 노동하던 집 자식이 분명한 청년 남녀가, 몸에 잘 어울리지 아니하는 도회식 옷을 입고 도회의 거리로 돌아다니는 꼴 -

아무리 제깐에는 도회식으로 차린다고 값진 옷을 입더라도, 원 도회사람의 눈에는 '시골 무지렁이, 시골뜨기' 하는 빛이 보여 골계(滑稽)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그러한 청년 남녀들이 땅을 팔아 가지고, 부모는 굶기면서 종로로, 동아, 삼월, 정자옥으로 카페로, 피땀 묻은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일종의 비참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지 아니하냐.

그렇게까지 해서 전문학교나 대학을 마친다 하자. 그리고는 무엇을 하여 먹나. 놀고 먹어보자던 소망도, 벼슬깨나, 회사원, 은행원이나 해먹자던 소망도 이 직업난에 다 달하지 못하고, 얻은 것이 졸업장 한 장과 고등 소비생활의 습관과 욕망과, 꽤 다수의 결핵병, 화류병, 자연 속에서 생장한 체질로서 부자연한 도시 생활에 들어오기 때문에 생기는 건강의 장애와 - 이것뿐이 아닌가.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을 파자니 싫고, 직업은 없고, 그야말로 놀고먹자던 것이 놀고 굶게 되지 아니하는가.

‘나도 그 중의 하나다’

하고 숭은 낙심이 되었다. 도리어 갑진의 기고만장한 어리석음이 유리한 듯도 하였다.

안으로는 이따금 세 줄기 여자의 곡성이 흘러나왔다. 하나는 정선의 소리요, 또 하나는 죽은 인선의 아내 조정옥(趙廷玉)의 소리였다. 그리고 하나는 아마 인선의 계모의 소리일 것이다.

인선의 아내 조정옥은 재동 조 판서라면 지금도 양반 계급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이의 손녀요, 남작 조남익(趙南翊)의 딸이다. 재동여자고보를 졸업하고, 또 기모노에 하까마를 입고 제이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이 왕직 인연으로 동경도 한 일년 다녀온 여자다. 윤 참판집은 아들 복은 없어도 미인 복이 있다는 말을 듣느니만치 정옥은 미인이었다. 다만 위에 말하였거니와 그가 눈웃음을 치고 여염집 부녀로는 너무 애교가 많았다.

그리고 그가 받은 교육에는 - 가정에서는 물론이어니와, 보통학교나 고등보통학교나, 또 고등여학교나 - 개인주의, 이기주의 이상의 아무 자극과 훈련이 없었다. 애국이라는 말은 원래 조선 교육에서 찾을 수가 없거니와, 전 인류를 사랑하는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라든지, 또 삼세 중생을 다 동포로 알고 은인으로 알아 그것을 위하여 제 몸을 희생하여 봉사하는 석가모니의 사상이라든지, 또는 조선사람이니, 조선사람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그들에게 조그마한 기쁨이라도 더하여주기 위하여 네 몸을 희생하라는 말이라든지, 또는 실제적 훈련이라든지는 받아보지 못하고,

기껏 부모에게 효도를 하라든지, 남편을 수종하라든지, 돈을 아껴 쓰라든지, 자녀를 사랑하고 깨끗이 거두라든지, 이러한 개인주의 내지 가족주의 이상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본 일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친정인 조 남작집은 가정이 문란하기로 이름이 있는 집이요, 그의 시집인 윤 참판집도 금전에 대한 규모밖에는 아무 높은, 깊은, 넓은 인생의 이상이 없는 집이요, 정옥이가 교제하는 사람들도 거의 다 정옥과 어슷비슷한 개인주의자, 이기적 향락주의자들이었다.

이러한 정옥이가 삼십이 넘을락 말락 해서 남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