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한 일주일의 야학이 끝나고 내일은 허숭이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마지막 날 야학에, 허숭은 더욱 정성을 다하여 남은 교재를 가르치고, 또 강연 비슷하게 여러가지 권유를 하였다.

야학은 부인반과 남자반 둘로 갈렸었다. 부인반에는 숭의 아주머니, 할머니뻘 되는 사람도 있고, 숭의 누이뻘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숭이가 설명하는 위생 이야기, 땅이 둥글다는 이야기, 해가 도는 게 아니라 땅이 돌아간다는 이야기, 비행기, 전기등 이야기, 무엇이 비가 되고 무엇이 눈이 되는 이야기 같은 것을 다 신기하게 들었다.

“그 원 그럴까.”

하고 혹 의심내는 이도 있었으나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남자반은 이와 달라서 질문하는 이도 있고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대관절 어째서 차차 세상이 살아가기가 어려워만 지나.”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도 있었다.

“요새는 대학교 조립(졸업)을 하고도 직업을 못 얻는대.”

하는 세상 소식 잘 아는 이도 있었다.

“너도 그만큼 공부했으면 인제는 장가도 들고 살림을 시작해야지, 공부만 하면 무엇하니?”

하고 할아버지뻘, 아저씨뻘 되는 이가 말을 듣다 말고 교사인 숭에게 뚱딴지 훈계를 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허씨들인 중에 간혹 등 너머 유씨들도 와서 섞였다. 여자반에도 그러하여서 유순이도 이렇게 와 섞인 이 중의 하나였다.

유순이는 보통학교를 졸업했지마는 야학에 출석하였다. 그는 가장 정성있게 듣는 이 중의 하나였다.

내일이면 떠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허숭은 자연 서운한 맘이 생겼다. 숭은 이야기하는 중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순을 바라보았다. 순의 눈도 숭의 눈과 가끔 마주쳤다. 숭은 이야기를 끝내기가 싫었다.

남녀반의 야학이 끝난 뒤에, 늙은 느티나무 밑에 남자들만 수십 명이 모여서 숭의 송별연을 열었다. 참외도 사오고 술도 사오고 옥수수도 삶아오고, 모두 둘러앉아서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너 이번 가면 또 언제 올래?”

“글쎄요. 내년에나 오지요.”

“조립(졸업)이 언제야?”

“내후년입니다.”

“법과라지?”

“네.”

“그거 조립(졸업)하문 경찰서장이나 되나?”

“……”

“군 서기도 되겠지. 군수는 얼른 안될걸.”

“변호사를 하면 돈을 잘 버나보더라마는 - 그건 또 시험이 있다지?”

“네.”

“걔야 재주가 있으니까 변호사도 되겠지.”

“변호사는 사뭇 돈을 번대.”

“돈벌이는 의사가 제일이야.”

“큰 돈이야 그저 금광을 하나 얻어야.”

“조선에야 돈이 있어야 벌지. 물 마른 것 모양으로 바짝 마른걸.”

“우리네같이 땅이나 파먹는 놈이야, 십원짜리 지전 한 장 손에 쥐어볼 수 있다구!”

“자, 채미(참외) 한개 더 먹지.”

“아암, 밤이 꽤 깊었는걸.”

이러한 회화였다. 숭은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혹은 낯도 후끈후끈하고, 혹은 한숨도 쉬었다. 그러나 숭은 이 무지한 듯한 사람들이 한없이 정답고 귀중하였다. 그들의 말속에는 한없는 호의가 있는 듯하였다. 저 인사성 있고, 눈치 밝고 쏙쏙 뺀 도회사람들보다 도리어 사람다움이 많은 것이 반가왔다.

이 밤에 숭은 협동조합 이야기를 하여 다수의 찬성을 얻었으나, 조직하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새벽차를 타려고 가방과 담요를 들고 당숙의 집을 떠나, 길가 풀숲에 우는 벌레 소리를 들으며 정거장을 향해 나갈 때에, 무너미로 갈리는 길에서 숭은 깜짝 놀랐다.

“내야요.”

하고 나서는 유순을 본 까닭이었다. 숭은 하도 의외여서 깜짝 놀랐다가 부지불식간에 유순의 손을 잡았다.

“언제 와요?”

“내년 여름에 올께.”

하고 숭은 자기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기대어 선 유순의 머리를 쓸었다.

떠날 때에 순은 숭에게 삶은 옥수수 네 자루를 싼 수건을 주었다.

숭이가 탄 기차가 새벽 남빛 어둠속으로 씩씩거리고 지나 무너미 모루를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순은 손을 내어두르며 눈물을 지었다.